조깅 이야기

중랑천에서

킬문 2011. 3. 19. 11:50

오늘 무려 11일만에 중랑천에 나갔습니다.
그동안 산행도 몇번 갔었고 장마가 겹쳐서 오랫동안 못 나간 셈이지요.
그것보다는 최근의 산행에서 유난히 힘이 딸리는것을 느꼈고 이제 기력이 떨어지는가 내심 걱정하던차에 오랫만에 하는 달리기라 더욱 긴장이 되더군요.


중랑천에 나가니 최근 내린 비로 맑은 물이 철철 흘러 내리고 평소 풍기던 악취도 별로 없습니다.
바위틈에는 작은 송사리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고 바지를 걷어 붙힌 아이들이 물속에서 놀고 있습니다.
몸을 조금 풀고 천천히 뛰어가니 낯익은 젊은이가 베낭을 메고 반대에서 달려오는데 내 생각에는 아마 사막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사막마라톤은 자기가 먹을것을 배낭에 넣고 뛰어야하는데 배낭메고 뛰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힘든것을 모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지나가는 얼굴에서 힘든 결정을 내리고 열심히 연습하는 강인한 의지가 보이는듯 해서 아직도 결정하지 못하고 차일피일하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조금씩 속도를 올려봐도 별로 무리가 되지않아 한 걱정은 덜었습니다.
앞에서 달려오는 많은 사람들과 지나치고 그중 낯익은 주자와 손을 번쩍 들어 반갑게 인사하는데 빨리 달리는 분들중 한분입니다.
자전거도로는 끝나고 다리를 건너 반대쪽의 도봉구쪽으로 건너갑니다.
노오란 해바라기들을 만나고 여물어가는 옥수수밭을 지나면 이번에는 흰색 메밀꽃들이 반겨주고 코스모스들도 한들거립니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을 보면서 작은 다리를 건너 다시 노원구쪽으로 돌아가면 파라솔까지 펴놓고 낮술을 즐기는 노인네 몇분이 눈에 띕니다.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는 분들께 알콜중독이니 낮술은 어쩌니 하는 말들은 아마 의미없는 이야기에 불과하겠지요.
시원한 강가에서 친구들과 한잔하는 그 여유가 오늘따라 더 부러워집니다.


방학교쯤 가니 청년의사회 상의를 입은 청년 몇명이 몸을 풀고있는데 아마 상계백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로 보입니다.
저도 저 나이때부터 달리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도 은근히 생깁니다.
사실 그때는 술담배와 주색잡기에만 온힘을 기울였으니 한심스러운 일이었지요...


서서히 속도가 줄지않게 신경을 쓰고 조금씩 스퍼트도 해 보며 강인한 근육과 튼튼한 심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느낍니다.
앞에 달려가는 사람들을 한명 한명 추월하며 뒷바라지 해주는 집사람과 가족들에게도 고마운 생각을 합니다.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속에서도 한줄기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끼며 살아있는 생명에 감동을 느낍니다.


창동교를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위해 몸을 풀고있고 이제 출발했던 탄현교도 가까워지니 긴장을 풀면 안되겠지요.
반대편에서는 전철이 기적을 울리며 지나가고 그뒤로 백운대와 인수봉이 삐죽 머리를 들고 있으며 상장봉 능선이 멋있게 보입니다.
녹천교를 지나며 인라인 스케이틀 타고 씽씽 지나가는 사람들을 뒤쫓으니 자전거를 배우는 사람들은 여전히 쩔쩔 맵니다.
마지막 힘으로 스퍼트를 하고 시계를 보니 저번보다 20여초 늦은 시간이니까 별로 나쁜 기록은 아닙니다.


그치지않고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딱으며 숨을 고르면 항상 그러하듯이 정말 몸이 가뿐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가족들과의 즐거운 토요일이 시작되겠지요.
천천히 걸어 가면서 이제 이 중랑천길을 사랑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장마철에 일시적으로 깨끗해진 물길을 보면서 하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