滿秋道峰
오전 근무 후 탁주 한 병 챙겨 느지막이 집을 나와 도봉산 입구로 들어가면 노인 분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고 주사위 노름을 하는 사람, 짝을 지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분들, 떼를 지어 일찍부터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큰소리를 지르는 인파들로 소란스러워 마치 얼마 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씁쓰레해진다.
서너 명 씩 물가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지나 문사동계곡으로 들어가 고양이 가족들과 함께 막걸리 한 컵 마시고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찬비를 맞으며 다른 곳에서는 볼품없다는 단풍들이 현란하게 펼쳐지는 숲 따라 용어천계곡을 지나 오후 들어 한결 인적이 뜸해진 거북골로 꺾어 들어간다.
그쳤다 퍼붓는 가을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전에는 한국의 名水 소리를 들었으나 지금은 오염으로 폐쇄된 거북샘을 지나서 작은 폭포 위에 앉아 붉디붉은 단풍잎을 감상하며 다시 막걸리로 절로 나는 흥을 북돋고 자운봉 갈림길에서 정상을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날도 궂어 그냥 관음암으로 꺾어진다.
우이암 너머로 펼쳐지는 북한산의 장엄한 실루엣을 마냥 바라보다 수많은 불상들이 모여 극락정토를 비는 것 같은 관음암을 지나고 스멀스멀 몰려오는 어둠 기를 느끼며 마당바위에 앉아 욕심껏 남은 술을 다 마시고는 천축사 갈림길에서 멀리서부터 개들이 짖던 성도원으로 내려가 어둠 속에 뭔가 일을 하며 랜턴이 없냐고 걱정하시는 스님께 예를 올린다.
스마트폰 불빛을 비추며 간신히 계곡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광륜사 쯤에서 자그마한 새끼와 함께 먹이를 찾으러 왔다가 훤한 불빛에 황급히 도망가는 거대한 어미 멧돼지를 보며 관리소로 내려가 서너 시간 만에 세계적인 명산의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했다고 자축하며 축축한 몸으로 버스에 오른다.
(14:55-18:40, 3'45", 202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