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밭등
칼바위님과 함께 상원사에서 가래터골로 들어가 최근의 비로 미끄러운 바위들을 딛고 폭포 하나만이 볼만한 답답한 계곡 따라 덤불들을 우회하며 안부로 올라가 차고 달달한 식혜 한 모금씩으로 갈증을 달래고 5월 들어 세 번째나 찾는 오대산에 싫증을 내며 힘없는 발길을 옮기다 눈부신 초원 지대가 사방에 펼쳐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어느 덧 마음이 풀려온다.
12일 전보다 부쩍 자란 당귀 순들을 뜯고 박 산행 배낭들이 7-8개 모여 있는 안부를 지나 매번 점심을 먹던 자리를 기웃거리며 반대에서 내려오는 젊은 남녀 한 쌍을 지나쳐 너무나도 낯익은 호령봉으로 올라가니 노란 양지꽃들은 벌써 사그라들었고 흐린 하늘 아래 우뚝한 계방산만이 변함없이 반겨준다.
서쪽으로 꺾어 흐릿한 족적을 따라가다 아까 지났던 배낭의 주인들인지 다시 숲에서 나물을 뜯는 남녀 두 분과 지나치고 반대에서 작은 배낭을 맨 채 홀로 올라오는 산객 한 분을 만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허기에 지쳐 숲에 앉아 대강 점심을 먹고 기대했던 감자밭등에 네다섯 번째로 내려가지만 을수골이나 대산골에서의 접근이 쉬운지는 몰라도 벌써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탔다.
샘터가 있다는 너른 안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양이 안차 실망을 하고 되돌아오며 곳곳의 덤불 틈으로 들어가 인적 없는 군락지를 찾아 욕심껏 배낭을 챙기고 호령봉으로 올라 맑게 개인 하늘을 쳐다보며 쉬고는 묵직해진 배낭을 둘러매고 하산을 서두른다.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비로봉 뒤로 소대산과 소감자밭등으로 청정하게 이어지던 지 능선을 살피며 삼거리로 내려가 가래터골과 동피골로 길이 갈라지는 안부에서는 지루한 계곡을 버리고 서대사가 있는 잔잔한 능선으로 들어간다.
서대사 뒤의 사면에서 전처럼 야들야들하지도 않은 곰취로 마저 욕심을 채우고 상원사로 돌아가 막차 전의 버스를 타고 진부로 나가 짬뽕 한 그릇과 편의점 커피로 뒤풀이를 하고 도로에 서 있는 병풍산과 매산 등산로 안내도를 자세하게 본 다음 멀리 다음에 갈 발왕산을 바라보며 여울지어 구비치는 오대천을 거슬러 걸어간다.
▲ 호령봉
▲ 감자밭등
▲ 호령봉
▲ 오대천
▲ 발왕산
(9:44-17:20, 9.5km, 7'36", 2025.5.25., 칼바위님과 다녀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