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km (문의중학교)
토요일의 교통혼잡을 생각하지 못하고 상봉동에서 오후 2시 10분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탔다가 청주터미날에서 문의까지 가는 마지막 셔틀버스를 4시가 넘어 간신히 탄다.
문의중학교에서 배번을 받고 서약서도 쓰며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백두대간과 정맥산행을 하면서 자주 접했던 표지기의 주인공인 신원기씨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집에서는 무슨 배낭을 멜까 고민도 했지만 대부분의 주자들은 물통이 있는 정상적인 울트라배낭을 메었고 작은 물가방이나 허리쌕을 한 사람은 거의 찾아볼수 없다.
운동장에서 긴장을 풀며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전국에서 모여든 459명의 건각들은 오후 6시 정각에 250리 대장정을 시작한다.
■ 10km (오가삼거리)---누적시간: 1시간 07분
문의를 빠져나가며 대부분의 주자들은 마치 풀코스를 하듯이 빠른 속도로 뛰어나가고 덩달아 빨라지는 발걸음을 애써 붙잡으며 후반을 기약한다.
대청호를 따라가는 길가에는 벚꽃들이 만발해있고 행렬에 발이 묶인 관광객들은 짜증도 내지않고 차안에서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해준다.
문의대교를 건너가면 산허리를 휘어도는 꽃길에는 빠른 속도로 뛰어가는 선두그룹이 보이고 뒤에는 몇십명 단위를 이룬 후미들이 따라온다.
5km를 35분에 통과하고 조금 속도를 올려서 10km지점인 오가삼거리를 비숫하게 1시간 7분에 통과를 하니 애초 생각했던 km당 7분의 속도를 유지하는 셈이다.
원래는 10km마다 시간을 재고 그때마다 속도를 조절하려 했지만 거리표시가 전혀 되어있지 않으니 대강 감으로 뛰는 수밖에 없고 오히려 홀가분해진다.
■ 37km (대청슈퍼)---누적시간: 4시간 16분
날은 서서이 어두어지고 대청댐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너니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이 가로등 불빛을 받고있고 늦게까지 꽃놀이를 하고있는 가족들이 부러워 보인다.
처음부터 언덕을 치고 오르던 주자들은 조금 가파른 언덕이 나오면서 슬슬 걸어 올라가기 시작하고 나 또한 속보로 걸으며 양갱 하나를 먹어둔다.
밀집됐던 대오들은 점차 간격이 벌어지고 멀리 앞서가는 일행들의 붉은 깜박이등을 바라보면 힘든 길을 같이가는 동료애가 느껴져 가슴이 뭉쿨해진다.
잔디밭에 불을 환하게 밝히고 네온싸인이 번짝거리는 레스트랑을 지나 꽃잎이 눈처럼 휘날리는 언덕을 넘으며 파워바 하나를 깨물어 먹는다.
고속도로와 국도가 교차하며 교통량이 많은 세천을 조심스레 뛰다가 길건너 가게에 들어가 쥬스 한캔 마시고 식수도 500ml 보충하고 재빨리 대열에 합류한다.
한구비 돌아 오르니 규모가 큰 "대청슈퍼"가 있고 많은 주자들이 앉아 쉬고있는데 37km에 4시간 16분 걸렸으니 km당 7분의 속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 44km(사성동) ---누적시간: 5시간 02분
대청슈퍼를 그냥 통과하고 가로등이 사라진 컴컴한 길에서 LED 헤드랜턴을 켰다가 그리 밝지도 않고 머리만 아파 집어 넣는다.
도로는 끝없이 이어지고 찰흑같은 어둠속에 앞서가는 일행들의 붉은 빛만 반짝거리며 발자국에 맞쳐서 흔들거리는 배낭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린다.
서서히 목과 어깨는 아파오고 10월에 "충주100마일 런"을 하려던 생각이 그만 쑥 들어가지만 행사차량은 신나는 음악을 틀고 배번을 불러주며 힘을 외치고 지나간다.
사성동을 지나고 컴컴한 언덕을 돌아 내려가니 자원봉사자 몇분이 박수를 쳐주며 44km지점이라고 하는데 이제서야 풀코스를 넘은 셈이고 속도는 아직 일정하다.
■ 56km (제1첵크포인트)---누적시간: 6시간 16분
어느 틈엔가 평탄한 도로가 이어지고 있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일행들을 만나고 추월하면서 점차 간격이 벌어진다.
잠이 들었을 가족들을 생각하고 흐릿한 달을 바라보니, 배낭때문인지 통증은 가슴까지 내려오고 언덕을 천천히 올라가는 발목도 점차 무거워진다.
시커먼 물줄기를 내려다 보며 길다란 회남대교를 건너고 어둠속에서도 사진을 찍어주는 분들께 손을 흔든다.
홀로 컴컴한 도로를 한동안 뛰어가니 환한 불빛이 보이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드디어 제1첵크포인트에 도착해 자필서명을 한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 틈에서 전복죽을 두그릇이나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식수만 보충했는데도 10여분이 후딱 지나가 바삐 일어난다.
■ 69km (피반령)---누적시간: 8시간 08분
죽을 먹고 바로 뛰어서인지 왼쪽 명치끝이 아파와 뛰다걷다를 반복하며 저절로 가라앉기만을 기다린다.
다행히 복통은 사라지고 계속 이어지는 언덕길을 오르며 회남과 회북을 차례로 지나면 잠에서 깬 개들이 사납게 짖어댄다.
물이 빠져서 황량하게 보이는 호반을 지나고 눈 쌓인 것처럼 흰색으로 보이는 벚꽃나무들을 보면서 미로처럼 나타나는 어둠을 뚫는다.
완만한 언덕을 뛰어서 올라갔더니 서서히 가파른 고개가 이어지고 자동차 불빛에 언뜻 드러나는 산세가 제법 험하며 도로는 꼬불거리고 이어진다.
쥐죽은듯 고요한 도로를 올라가다 오랫만에 만나는 주자 두사람은 간식을 먹는다고 주저앉고 홀로 터벅터벅 고갯마루를 걸어간다.
대회코스중 가장 높고 험하다는 해발 361m의 피반령 정상에 올라서니 달빛은 숨어 사방이 컴컴하고 바람은 차겁게 불어오며 속세의 불빛들이 내려다 보인다.
■ 74km (임시첵크포인트)
힘을 내서 고갯마루를 천천히 뛰어 내려가면 불켜진 간이식당이 보이고 길가에 서있던 웬 사람이 22번째라고 소리를 지른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가파른 도로를 무릎을 조심하면서 한동안 내려가니 걸어가던 주자 한사람이 잠시 따라오다가 다시 뒤쳐진다.
불꺼진 인차리삼거리로 내려가니 임시첵크포인트가 설치되어 있어 배번표에 검인을 받고 물만 한모금 더 마시고 급한 걸음을 옮긴다.
■ 80km (상장삼거리)
이제 주자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어디인지도 모르며 시커먼 도로를 달려 나가니 쌀쌀한 밤공기에 땀이 마르며 추어진다.
배낭은 뒤에서 덜렁거리고 끝없이 나타나는 언덕을 걷고 오르며, 맨몸으로 평탄한 길 100km를 달리고는 울트라를 뛰었다고 자만하던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죽을 먹어서인지 배는 고프지 않고 연신 물만 먹히며 전조등을 켜고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하면서 쓸쓸하게 공동묘지를 넘는다.
어느덧 낯익은 길이 나타나고 곧 상장삼거리에 도착하니 지원봉사자가 더운 커피를 권하지만 사양하고 왕복해야하는 청남대로 향한다.
■ 89km (제2첵크포인트)---누적시간: 10시간 09분
이제는 다왔다는 안도감도 들어 언덕도 가능하면 걷지않고 뛰어서 올라가니 어둠속에서 선두인듯한 주자가 날렵하게 뛰어온다.
시커먼 대청호를 바라보며 끝없이 나타나는 언덕들을 지나면 저 멀리 대청댐의 불빛들이 마냥 따스하게 보이고 문득 곤하게 자고있을 가족들이 생각난다.
청주마라톤클럽의 이정표를 보면서 지겨운 길을 뛰어가면 선두그룹의 주자들이 한두명씩 지나가는데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도로를 돌고돌아 차 한대와 자원봉사자 두사람이 있는 제2첵크포인트에 도달해서 서명을 하고 이온음료 한캔을 마시니 어찌나 달고 시원한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 100km (문의중학교)---누적시간: 11시간 27분
이제 마지막 남은 11km만 생각하고 기운을 내어 되돌아 가면 비로서 뒤따라오는 주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주치며 힘을 외치고 첵크포인트를 물어보는 지친 주자들을 격려하며 언덕에서도 쉬지않고 천천히 뛰어간다.
앞서던 주자들을 몇명 추월하고 상장삼거리로 되돌아가니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고 방향을 바꾸어 골인점인 문의중학교를 향해서 질주를 한다.
여명은 서서히 밝아오고 희뿌연 새벽길을 따라 힘차게 문의중학교로 들어가면 드디어 해냈다는 감격이 밀려오고 많은 분들이 박수로 완주를 축하해준다.
자신의 의지로 불을 밝히고 밤새 250리길을 뛰어 운동장에 서니 어둠은 점차 물러가고 있고 대청호의 물안개가 잔잔히 피어 올라온다.
(십장생 주석판과 완주기념으로 받은, 순금 1돈으로 만들어진 노란색의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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