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낙동.낙남정맥

낙남정맥 11구간 (외삼신봉-삼신봉-영신봉-백무동)

킬문 2006. 7. 11. 15:28
2004년 10월 09일 (토요일)

◈ 산행일정
고운재(05:38)
묵계치(06:40)
외삼신봉(08:25)
청학동갈림길(08:46)
삼신봉(08:59)
한벗샘(10:01)
자연석문(10:55)
음양수(11:30)
영신봉(12:12)
백무동(15:01)
동서울터미널(20:18)

◈ 산행시간
약 6시간 34분

◈ 산행기

- 고운재
이른 새벽 민박집 마당으로 나가다가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 가슴이 철렁였지만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계곡 물소리가 온 마을을 울리고있다.
고운재까지 차로 데려다 주시겠다는 주인 아저씨가 깨기를 기다려 나가보니 어느 틈엔가 빗줄기가 내리고있어 한시간만 더 기다렸다 올라가기로 한다.
조금 눈을 부친후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고갯마루를 차로 올라가, 랜턴을 켜고 철망이 끝나는 곳을 넘어서니 지리산의 시커먼 산자락이 가슴을 압박하듯 짓 눌러온다.
아직까지는 말라있는 흙길을 밟으며 천천히 산마루를 올라가면 바람은 거세게 불어오고 낙엽들은 사방으로 날리며 빗줄기는 후두둑거리며 나무잎에 떨어진다.
땀이 흐를때 쯤 바람은 미친듯이 불어오고 나뭇가지들은 마구 춤을 추며, 눈앞을 빠르게 지나가는 낙엽은 무슨 동물인양 착각되어 깜짝 놀라고 숲을 바라본다.


- 묵계치
낮은 봉우리를 오르면서 어둠속에 공포스러운 산죽지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빗줄기는 덩달아 거세지며 온몸을 적셔온다.
헤엄을 치듯 빽빽한 산죽들을 헤치고, 허리를 바짝 굽힌채 기어가듯 산죽터널을 통과해서, 땅바닥에 랜턴을 비쳐가며 감각적으로 길을 열어간다.
봉우리들을 계속 지나고 잡초들이 무성한 헬기장이 있는 묵계치로 내려가면 기다렸던 아침이 밝아오며 지리산이 희뿌옇게 흐린 모습을 보여준다.
선채로 비에 젖은 삼각김밥을 먹고 있으려니 신세는 처량한데 산자락에는 운무가 뭉실뭉실 피어오르고 멀리 누워있는 민가들은 평화스럽고 따뜻하게 보인다.



(헬기장이 있는 묵계치)


- 외삼신봉
지겨운 산죽밭은 계속 이어지고 산죽들을 헤쳐가며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 땀인지 빗물인지 온몸은 젖어오고 바람이 불며 추위가 엄습한다.
힘겹게 산죽들을 뚫고 바위지대가 있는 봉우리에 오르니 암릉들은 빨간 단풍으로 물들어있고 운무가 걷히며 추색에 젖은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바위지대들을 지나서 봉우리를 넘으면 한쪽이 암벽으로 되어있는 멋진 봉우리가 앞에 보이지만 혹독한 겨울을 예고하듯 바람은 세차게 불어오고 낙엽은 사방으로 휘날린다.
바위들을 기어 오르고 밧줄이 걸린 암봉을 넘어 정상석이 있는 외삼신봉(1288.4m)에 오르니 삼신봉과 내삼신봉이 앞에 듬직한 모습을 드러내고 노랗게 물든 지리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뚜렸해진 등로를 따라 낙엽깔린 호젓한 능선길을 지나고 산죽들을 헤치며 내려가면 앞이 툭 트이면서 이정표가 있는 청학동 삼거리가 나오고 고속도로처럼 반질반질한 길이 기다린다.



(추색에 물들어가는 봉우리들)



(운무가 지나가는 봉우리)



(암릉지대)



(외삼신봉 정상)



(외삼신봉)



- 삼신봉
깊게 패인 돌밭길을 따라 암릉길을 올라가니 청학동에서 올라온듯한 청바지차림의 젊은 남녀들이 내려오고 운무속으로 아름다운 암봉들이 모습을 보여준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삼신봉(1284m)에 올라 정상석과 조망안내판이 있는 바위에 서면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정맥의 마루금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고 구름에 덮힌 지리산 연릉들과 천왕봉이 그 웅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태전 날씨 좋은 초가을날에 올라와 지도를 살펴보던 돌탑옆 그 자리에서 지나온 마루금과 내삼신봉을 다시한번 바라보고 영신봉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산불로 고사목들이 많이 서있는 관목지대를 따라 내려가면 추색에 물들어가는 산봉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날이 개일듯 파란하늘이 이따금씩 펼쳐진다.
암릉을 휘어돌아 봉우리들을 넘고 잘 손질된 산죽지대들을 지나면서 그쳐가던 빗방울은 다시 굵어지고 바람도 거세게 불며 체온을 빼앗아간다.



(삼신봉 정상)



(삼신봉에서 바라본 외삼신봉)



(삼신봉에서 영신봉으로 뻗어 올라가는 마루금)



(삼신봉에서 바라본 내삼신봉)



- 영신봉
1214봉을 넘어 한벗샘에 도달해서 물방개처럼 생긴 작은 곤충들이 놀던 맑은 샘을 떠 올리고 있으니 100여미터 밑의 샘가에서는 깔깔거리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헬기장과 암봉을 차례로 지나고 비를 피할수있는 천혜의 비박터를 지나며 다시 산죽군락이 이어지더니 곧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자연석문을 넘는다.
빗줄기가 뿌려대는 음양수에서 세석산장으로 연결되는 길을 버리고 6.25때 여자빨치산들이 집단으로 자살했다는 제단터를 넘어 능선으로 붙는다.
희미한 족적따라 능선만 가늠하고 잡목지대를 올라가면 운무에 가린 암봉들이 나오고 억센 관목들이 길을 막아서며 성난 바람은 거세게 불어온다.
기암들이 솟아있는 바위지대를 넘고 석축을 쌓은 헬기장을 넘어서니 전에 막고 있었던 철조망은 보이지 않고 펜스너머로 주등산로가 반갑게 나타난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비바람이 몰아치는 영신봉(1651.9m)에 오르면 키작은 관목에는 선답자들의 표지기 몇개만이 나풀거리고 온 세상은 짙은 구름에 덮혀있다.
낙동강의 남쪽을 가르며 김해의 신어산에서 이곳 영신봉까지 이어지는 220km의 산줄기를 밟아오며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느꼈는지...
무심한 산객은 그저 사방을 두리번거릴 뿐이다.



(자연석문)



(음양수)



(제단터)



(영신봉)



- 백무동
유난히 힘들었던 올 여름의 정맥길을 생각하며 비 뿌리는 주능선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몇명의 젊은 등산객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빠르게 앞질러 간다.
건장한 저들 가운데 누군가도 우리의 산줄기를 생각하며 선답자들의 뒤를 밟을 것이라 생각하니 발걸음도 가볍고 마음이 편해진다.
추위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세석산장으로 내려가 봐도 기대했던 컵라면은 팔지를 않고, 입김을 호호 불며 더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라면을 먹는 사람들만 물끄러미 쳐다보다 그냥 돌아 나온다.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나무계단을 천천히 올라가 운무 짙게 깔린 주능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백무동을 향하여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