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종자산에서 랜턴을 켜지 않고 날 밝을 때 내려와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산행 시간도 길지 않았고 나름 걱정했던, 산행마다 나타나는 극심한 어깨 통증도 없어서 만족해 하다가 파리떼 때문에 얼굴에 걸쳤던 안경이 사라진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란다.
딸아이가 유럽에서 사 왔던 린드버그 테에 자외선 차단 렌즈를 낀 보안 성격의 무도수 안경이지만 10년 넘게 사용했고 또 간혹 보기 싫은 얼굴의 점도 가려주는 미용 용도로도 써왔기에 비싼 값을 떠나서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종일 비 예보에 우산을 쓰고 나와 포천 시청 앞에서 관인 가는 버스를 타고 어제 산행을 시작했던 중2리에서 내려 오랜만에 우비를 쓰고는 내가 문을 닫고 나왔던 철문을 열고 들어가 주룩주룩 내려오는 비를 맞으며 한적한 산길을 쉬엄쉬엄 올라간다.
바위굴성을 지나 줄줄이 쳐진 안전시설들을 잡고 밟으며 종자산에 올라 어제처럼 온통 비구름에 가린 산하를 둘러보고 서둘러 619.5봉을 넘어 밧줄 난간이 쳐진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다가 어제 땅에 떨어진 페트병을 주워 땀과 송화가루에 찌들은 얼굴을 닦았던 그 지점을 찾아 온통 비에 젖어 다소곳하게 바위에 누워있는 안경을 발견하니 기쁘기도 하고 또 부처님의 지극한 자비를 느끼게 해준다.
너무 기쁜 마음에 옆의 바위에 앉아 우정 집에서 준비해 간 캔맥주를 마시며 자축을 하지만 곧 운행을 멈춘 젖은 몸에 갑자기 한기가 몰려와 부랴부랴 일어나 중리저수지 삼거리로 걸어가 어제 올라왔던 능선을 버리고 미답 지인 저수지 쪽으로 꺾는다.
어제의 그 능선은 아니지만 똑같이 산양삼 재배지의 흰 끈과 경고문이 줄줄이 걸려있는 지능선 따라 가파른 산길을 조심스레 미끄러져 내려가 안부에서 저수지 옆의 임도로 나가지만 예전처럼 자물쇠로 굳게 막혀있어 주위를 둘러보다 하는 수 없이 긴장해서 조심스레 철문을 넘는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의 철망이 강원도 전역에 쳐진 다음의 기현상이지만 철망 문을 개인의 자물쇠로 잠그고 홀로만 이용하며 공공의 통행을 가로막는 그 저열한 세태에 분개하며 경기둘레길 따라 중리저수지를 빠져나와 중1리 정류장에서 배낭을 정리하다가 올 4월에 개통했다는 99번 버스를 갑자기 만나 홀로 전세 내어 포천으로 나간다.
(중2리-종자산-중리저수지-중1리, 6km, 8:41-11:38, 2026.5.3)

▲ 종자산

▲ 문암동 지능선 삼거리

▲ 종자산 정상

▲ 종자산 등산로

▲ 분실했던 안경

▲ 중리저수지 삼거리

▲ 철망문


▲ 종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