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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6구간 (주릿재-존제산-징광리)

킬문 2006. 7. 13. 00:12
2003년 12월 6일 (토요일)

◈ 산행일정

강남터미널(01:00)
광주터미널(04:33)
곡천(06:05)
석거리재(07:06)
500봉(07:42)
485.5봉(09:02)
주릿재(09:30)
존제산(10:28)
징광리(14:30)
벌교터미널
순천터미널(17:20)
강남터미널(21:50)

◈ 후기

겨울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승객이 꽉찬 새벽 1시발 광주행 심야버스는 후줄근스럽고 답답한데 사방에서 들려오는 전화통화 소리는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광주에 도착하니 비는 더욱 쏟아지고 아침밥을 사먹고 벌교행 5시 첫차에 앉아 있으려니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천천히 우중산행을 준비한다.
기사의 충고대로 벌교가기 전의 곡천이란 작은 마을에서 내려 어둠컴컴한 대합실에서 40여분 기다리다가 군내버스를 탄다.
희뿌옇게 여명이 밝아오는 석거리재에 내리니 주유소의 개만 짖어대고 다행히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풀섭에 맻힌 빗방울들이 금새 몸을 적신다.


까치밥인지 노란 감들이 남아있는 과수원을 지나고 한적한 산길을 올라가면 후두둑거리며 빗방울들이 날리고 비구름은 사방을 가리우고있다.
솔길을 따라 봉우리들을 넘고 시든 억새들을 지나니 조망이 잠깐 트이며 왼쪽으로 추동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백이산이 뾰족하게 솟아 올라 내려다 보고있다.
산불이 났었는지 타버린 나무들을 베어낸 넓은 길을 지나고 임도삼거리에 도착하니 비안개만 자욱한데 무심코 임도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되돌아온다.
빗줄기가 뿌려대는 삼거리에서 서쪽임도로 들어가 산길을 이어가면 넓은 억새밭이 나오고 삼각점이 있는 485.5봉에 오르니 거센 바람이 불어오며 드디어 존제산(703.8m)이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푹신한 낙엽 길 따라 내려가다 높은 절개지가 있는 도로공사현장을 지나고 곧 자그마한 공원이 있는 815번 지방도로상의 주릿재에 내려서니 "등산객진입불가" 안내판이 서있다.


존제산을 향해서 비포장 군사도로를 올라가면 왼쪽 밑으로는 산불지대가 보이고 임도 하나가 존제산을 휘돌며 올라간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오늘 산행 실패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도로를 올라가다 밑으로 연결되는 좁은 시멘트 길을 발견하게 되고 여차하면 다시 내려와 임도로 내려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백림농장을 지나고 지겹게 이어지는 군사도로를 꾸준히 올라가면 정상쪽에 갈수록 바람이 세게 불고 산등성이에는 비구름들이 가득차 불안해진다.
송신국을 지나고 짙은 안개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도로에서 방법을 강구하다가 목표물이 보이지도 않는 지뢰지대를 우회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내려가기로 결정한다.


힘들게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 아까 보았던 임도로 내려가보니 연결것 같았던 임도는 조금 가다 끊어지고 앞에는 가시덤불만 기다리고 있다.
어쩔수없이 백림농장으로 들어가 존제산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가면 무덤에서 길은 끊어져 까시들을 헤치며 밑에 보이는 임도로 갈아 탄다.
억새평원 사이로 지나가는 묵은 임도는 엉뚱한 곳으로 이어지고 방향만 잡고 무작정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붙으니 까시나무들과 잡목들만 가득하고 발밑에는 불탄 나무들이 널려있다.
한동안 고민을 하다 저 멀리 맞은 편으로 보이는 군부대를 겨냥하고 무작정 산을 치고 내려가기로 한다.
까시나무들을 돌고 잡목들을 헤치며 암벽을 피해 간신히 내려가니 난들이 군락을 이루고있고 계곡은 제법 수량도 많으며 작은 폭포들도 형성되어있다.


계곡을 건너고 다시 작은 산죽들이 덮고 있는 비탈을 오르면 밑은 흘러 내리는 너덜지대라 움직일때마다 돌멩이들이 굴러 떨어진다.
점점 산죽들은 거세지고 똑바로는 오를 수 없어 옆으로 우회를 하니 작은 봉우리 하나 오르는데도 아까운 시간은 물같이 흘러간다.
파랗게 이끼가 낀 우중충한 너덜지대를 건너고 잡목들을 헤치며 조금씩 산으로 오르다 이번에는 키큰 산죽지대를 만나는데 얼마나 빽빽한지 도저히 통과할 수가 없다.
산죽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다 누운 나무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또 작은 절벽들이 연이어 나오니 고행길이 이어진다.
천신만고 끝에 주능선이 약간 보이는 곳까지 올랐지만 아직도 큰 산줄기를 넘어야 부대를 우회할 수 있고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알 수가 없다.
고생끝에 천치고개를 가더래도 결국은 정맥을 우회하는 것이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길찾기 3시간 30분만에 과감하게 내려 가기로 결정을 한다.


지겨운 산죽들을 간신히 헤치고 지계곡을 따라 미끄러지며 계곡으로 내려가 물가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소주 한잔을 마시며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을 달랜다.
임도를 찾아 징광리라는 마을로 내려가니 벌써 오후 2시 30분이라 이제 천치고개를 찾아간다고 해도 오도치까지는 갈 수도 없고 또 중간에 탈출로도 마땅치 않으니 오늘의 산행은 접기로 한다.
마을의 할아버지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천치고개를 찾으러 어슬렁대다가 택시를 불러타고 벌교로 나간다.
원래는 벌교에서 자고 하루 더 산행을 하기로 했지만 김도 빠지고 천치고개에서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하면 구간 끊기가 영 애매모호해 그냥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다.
덜컥 있지도 않은 임도를 있다고 착각한 결과였지만 무리가 되더래도 존제산에서 천치고개로 우회를 했던지 아니면 주릿재에서 존제산까지의 의미없는 구간을 생략하고 천치고개에서 다시 산행을 이어가야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