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금남호남.호남정맥

호남정맥 10구간 (삼계봉-봉미산-봉화산-예재)

킬문 2006. 7. 13. 00:24
2004년 1월 17일 (토요일)

◈ 산행일정
강남터미널(00:55)
광주터미널(04:26)
이양(07:57)
월곡(08:15)
장고목재(08:40)
삼계봉(09:20)
430봉(10:04)
깃대봉(10:29)
국사봉(11:00)
백토재(11:14)
476봉(11:56)
웅치(12:34)
봉미산(13:19)
494봉((13:47)
숫개봉(14:41)
420봉
뗏재
군치산(15:31)
초방리안부(16:12)
큰덕골재(16:49)
397.4봉(17:36)
고비산(17:58)
가위재(18:09)
봉화산(19:28)
예재(20:09)
능주(20:50)
광주터미널(22:05)
강남터미널(01:45)

◈ 산행시간
약 11시간 29분

◈ 산행기

- 장고목재
계속되는 모임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서 곤하게 자다 광주에 도착하니 진눈깨비가 주룩주룩 내려온다.
호남 지방에 5cm의 눈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연히 산에만 조금 쌓이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었는데 도로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심란해 진다.
2시간 여 기다려 첫 버스로 봉림에 도착하고 병동 들어가는 버스를 40 여분 기다릴 수는 없어 장평 택시를 불러 탄다.
전에 군내 스를 기다렸던 병동마을의 정자를 지나고 도로의 끝인 월곡마을에서 내려 산행 채비를 하면 촌로 한분이 물끄러미 쳐다 보신다.
싸락눈을 맞으며 인적 없는 임도를 올라가니 장고목재에는 흰눈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시커먼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눈가루가 내려온다.



(눈덮힌 장고목재)


- 삼계봉
온통 설화를 피우고 있는 능선으로 들어가면 하얗게 펼쳐지는 신천지에 감탄사가 나오고 무덤가에 미리 붙혀 놓았던 내 표지기도 반갑게 맞아 준다.
평소와는 달리 예쁘게 눈단장을 하고 있는 가시덩굴과 잡목들을 잡아가며 가파른 눈길을 올라가니 시커먼 설산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발 아래 월곡마을이 흐릿하게 내려다 보인다.
삼각점이 있는 삼계봉(503.9m)을 넘고 키 큰 산죽 지대를 통과하면 온 몸은 눈으로 뒤덮히고 습설은 금새 바지를 적셔온다.
돌축대를 쌓아놓은 430봉 헬기장에 오르니 땅끝기맥의 출발지 임을 알리는 기념석이 서있고 기맥 쪽으로도 알만한 표지기들이 몇개 붙어있어 가슴이 설레어진다.
계속 나타나는 산죽들을 뚫고 별 다른 표식이 없는 깃대봉(448m)을 오르면 능선은 급하게 떨어지고 운곡마을에서 올라오는 삼거리 안부에서는 농가들이 가깝게 보이고 개 짖는 소리가 반갑게 들려온다.



(잡목과 가시덤불에 핀 눈꽃)



(눈에 파묻힌 정맥길)



(눈꽃들)



(삼계봉 정상)



(땅끝기맥이 갈라지는 430봉)



- 웅치
가시 덤불들을 헤치며 국사봉(477m)을 넘고 지겹게 이어지는 공포스러운 산죽 숲을 지나니 몸은 완전히 물에 빠진 듯 축축해지고 젖은 바지는 찰싹 달라 붙어 피부가 쓰라려 온다.
헬기장을 지나고 임도가 넘어가는 백토재로 내려가 간식에 소주 한잔 마시며 추운 몸을 달래고 시려오는 손가락들을 바삐 움직여 본다.
눈은 하염없이 내려오고 이런 상태로는 오늘의 목적지인 예재는 커녕 큰덕골재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렵게 찾아온 호남정맥이라 갈수 있는 데까지는 가보자며 마음을 다져 잡는다.
다시 가파른 봉우리를 넘고 476봉에 오르면 멀리 산 허리에 도로가 보이고 그 에 봉미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잿빛 하늘 속으로도 가지산에서 말굽형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흐릿하게 보인다.
계속 나타나는 봉우리들을 넘으니 다행히 눈발은 서서히 그쳐가고, 영상의 날씨에 질퍽거리는 산길을 서둘러 따라가 839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웅치로 내려간다.
조금 위의 고갯마루에는 아침에 지나오며 봤던 휴게소가 있을 테고 뭔가 따뜻한 국물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어차피 젖은 몸이고 시간도 빠듯해서 그냥 절개지를 올라간다.



(공포의 산죽지대)



(웅치)



- 숫개봉
"과천 김형오"씨의 표지기를 반갑게 보면서 덤불과 잡목들을 헤치며 능선으로 붙으면 노송들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연결된다.
가파른 눈길을 올라 헬기장을 지나고 역시 헬기장에 삼각점이 있는 봉미산(505.8m)에 오르니 시야가 트이며 지나온 산줄기가 잘 보이고 가야할 정맥 길은 흰 눈을 덮은 채 끊임없이 이어져 나간다.
선 채로 점심을 먹으며 멀리 펼쳐지는 조망들을 둘러보고 호남정맥의 끝인 주줄산을 생각하며 9정맥 완주의 날을 기대해 보면 그만 가슴이 뭉쿨해진다.
소나무에 얹혀있는 멋진 눈꽃들을 감상하며 앞에 보이던 484봉 헬기장에 오르니 숫개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북쪽으로 꺾어지고 수많은 봉우리들이 기를 죽인다.
마치 산을 다 내려갈 듯 뚝 떨어지는 눈길을 확인을 거듭하며 내려가면 억새가 무성한 임도가 나오는데 길이 애매모호해서 방향 잡기가 힘들다.
이어지는 봉우리들을 넘고 우뚝 솟아 보이던 숫개봉(496m)에 힘들게 오르니 나무 몇 그루만이 반겨주고 마루금은 급하게 동쪽으로 꺾여 나간다.



(봉미산 정상)



(봉미산에서 바라본 숫개봉)



(숫개봉 정상)



(숫개봉에서 바라본, 봉미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



- 큰덕골재
서 있으면 춥기도 하고 큰덕골재에 빨리 내려가야 예재까지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 되니까 쉬지도 못하고 바쁜 걸음을 옮기게 된다.
420봉을 오르고 날카로운 암릉들을 조심해서 내려가 뗏재는 어디인지도 모르게 지나쳐 버리고 계속 나타나는 봉우리들을 묵묵히 오른다.
평범한 국사봉(412m)을 오르고 무덤이 있는 봉우리들을 연신 넘으니 눈에 젖은 몸은 떨려오고 손가락은 끊어질 듯 아려오지만 한켤레 남은 장갑은 비상시를 대비해서 남겨둔다.
초방리로 이어지는 사거리 안부를 지나면 뭔가 많은 사연을 간직했을 듯한 돌 무더기들이 눈에 덮혀있고 갈길 바쁜 산객 또한 쓸쓸한 마음이 든다.
낮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임도가 지나가는 큰덕골재로 내려가니 어언 5시가 다 되어 가는데 편하게 큰덕골로 내려가야 할 지 무리가 되더라도 예제까지 계속 가야할 지 갈등에 빠진다.
고민은 잠시 뿐이고 예재까지 가야 다음 구간을 끊기가 편할 것 같아 후레쉬 밧데리를 새 것으로 갈아끼고 간식을 먹으며 야간 산행에 대비한다.



(큰덕골재 임도)


- 봉화산
어두어지는 산줄기들을 비장하게 바라보며 넓게 파여진 방화선을 따라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어린 소나무 묘목들이 가여워 보이고 진흙은 신발에 뒤엉겨 붙어 자주 미끄러진다.
한동안 이어지던 방화선을 지나서 397.4봉에 오르니 삼각점은 없으며 기다란 능선 끝에 불쑥 솟아있는 봉화산이 너무나 먼곳에 있어 내심 불안해 진다.
펑퍼짐한 고비산(422m)을 넘고 임도가 지나가는 가위재로 내려서면 어둠이 몰려와 후레쉬 불빛 두개에 의지하며 정신을 바짝 차린다.
수북하게 눈이 깔린 산속에는 발자국 하나 없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길의 흔적만 쫓으며 본능적으로 잡목들을 헤쳐간다.
연신 나타나는 봉우리들을 넘고 우회하며, 눈에 파묻힌 억새밭과 산죽지대를 넘고 또 되돌아서며 길을 놓치지 않으려 필사의 노력을 한다.
시커먼 숲속에서 허리를 굽혀가며 길을 확인하고 이제나 저제나 봉화산만을 기다리며 봉우리들을 넘고 또 넘는다.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고 드디어 봉화산(484m)으로 생각되는 봉우리에 오르니 큰 구덩이만 파여있고 눈 속에 묻혔는지 삼각점은 찾아볼 수 없다.
큰덕골재부터 2시간 30여분이나 걸려 눈길을 헤치고 봉화산을 넘었지만 저 멀리 예제 쪽으로 불빛 몇개가 반짝거려서 반가워지고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 예재
발자국은 없지만 운 좋게도 흔적 있는 눈길이 이어지며 삼각점이 있고 전망이 좋다는 465.3봉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지나친다.
고도를 낮춰가며 이리저리 방향이 갈라지는 눈길을 조심해서 내려가면 눈덮힌 적막강산을 뚫고 나왔다는 사실이 실감나고 또 무리하게 강행했던 산행이 후회가 된다.
한동안 숲을 내려가니 갑자기 앞이 열리며 어둠에 잠겨있는 포장 도로로 떨어지는데 바로 예재 옛 도로이고 밑으로는 29번 국도가 예재터널로 지나갈 것이다.
아무런 시설물도 없고 인적 또한 없는 고개마루에서 이양택시를 부르고 잠시 서 있으면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와들와들 떨려오기 시작한다.
소주 한 컵을 마시고 사탕 몇개를 집어 먹으며 하루종일 눈에 젖은 몸뚱이를 달래고 있으니 한참 후 불빛이 보이며 얼어붙은 도로를 올라오는 차 소리가 들린다.
다음에 이어가야 할 시커먼 고갯마루를 한번 쳐다보고 훈훈하게 달구어진 택시에 오르면 갑자기 한기가 몰려오며 마치 사시나무처럼 몸은 세차게 떨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