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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16구간 (상왕봉-내장산-망대봉-개운치)

킬문 2006. 7. 13. 00:38
2004년 4월 29일 (목요일)

◈ 산행일정
강남터미널(23:00)
정읍터미널(01:55)
감상굴재(05:00)
곡두재(05:54)
도집봉(07:07)
상왕봉(07:28)
새재(08:06)
소죽엄재(08:30)
까치봉(09:32)
신선봉(10:01)
연자봉(10:30)
장군봉(10:54)
유군치(11:10)
추령(11:39)
송곳바위(12:34)
530봉(13:03)
복룡재(13:18)
434.9봉(13:30)
506봉(13:57)
여시목(14:07)
두들재(14:32)
553.8봉(15:07)
개운치(15:39)
정읍터미널(16:40)
강남터미널(20:30)

◈ 산행시간
약 10시간 39분

◈ 산행기

- 감상굴재
고속철도가 생기면서 심야에 다니던 호남선 열차는 다 없어졌고 하는 수 없어 전날밤 11시 심야 버스를 타니 정읍에는 새벽 2시도 안되어 도착한다.
배낭을 메고 이리기웃 저리기웃하며 터미널 근처를 헤메다가 청년 한명 만이 자리를 지키는 허름한 다방에 들어가 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옆에서 소파에 기대 한숨 눈을 붙여본다.
뒤늦게 돌아온 티켓 다방 아가씨와 커피 한잔씩 마시고 문 닫는 다방을 나와 편의점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는 전에 이용했던 복흥 택시를 부른다.
컴컴한 터미널 대합실에서 제법 쌀쌀한 날씨에 떨다 보면 텅빈 도시에서 두 세시간 보내는 것도 힘든 일이라 앞으로는 산행 계획을 짧게 잡고 대신 아침 첫차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늦게나마 생긴다.
금슬 좋은 기사님 부부가 반갑게 맞아주는 택시를 타고 추령고개를 넘어 감상굴재에 도착하니 어스름한 새벽 기운에 정맥의 실루엣이 시커멓게 다가온다.


- 곡두재
고목 한 그루가 지키는 마을 안으로 잘못 들어갔다가 잠자던 개들만 깨우고 돌아나와 시멘트 도로로 들어가다 산으로 붙으니 제일 먼저 무덤들이 반겨준다.
야산 지대를 지나서 시멘트 소로를 넘고 잡목들을 헤치며 희미한 산길을 올라가면 몇 채 안되는 농가들은 허연 구름에 묻혀있고, 지나온 산봉들은 시커멓게 솟아올라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다.
상큼한 기운이 드는 오솔길을 따라 407봉을 오르고 푹신한 낙엽들을 밟으며 임도가 지나가는 곡두재로 내려서면 일출이 시작되고 멋지게 솟은 암봉들이 보여 이미 내장산 권에 들어왔 음을 느끼게 해준다.
가족 무덤들을 지나고 마을과 바짝 붙은 밭을 가로질러 농장 철망따라 산으로 오르니 작은 물길을 건너게 되는데 아마 길이 없어 보이던 왼쪽 능선을 뚫어야 했었던 모양이다.



(일출을 맞는 곡두재)



(곡두재 넘으며 바라본 암봉들)



- 상왕봉
가파른 비탈길이 시작되고 험준한 바위지대를 휘돌아 올라 푸르른 노송들과 분홍색 철쭉이 잘 어울리는 암봉에 서면 추월산 쪽으로는 수많은 산봉들이 겹겹이 서있고 너른 전답들 옆으로 백제의 천년고찰 백양사가 내려다 보인다.
울창한 산죽 밭을 따라 구암사와 이어지는 사거리 안부를 넘고 백암봉 길이 갈라지는 넓은 헬기장을 지나 사자봉과 상왕봉을 바라보며 바위지대를 넘는다.
계속 이어지는 산죽 길을 지나서 암릉이 삐쭉삐쭉 솟아있는 도집봉(720m)에 올라서니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며 드디어 내장산이 전면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철쭉들이 피여있는 관목 지대를 지나고 산벚꽃 향이 그득한 숲을 따라 백양산 최고봉인 상왕봉(741.2m)에 오르면 까치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잘 보이고 서쪽으로는 산불 초소가 있는 사자봉이 속살을 보여주며 손짓을 한다.
정상에서 약간 내려가 새재로 이어지는 숲길로 들어서니 아직은 경방 기간이라 꺼름직하지만 마루금을 온전히 이어보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뒤엉켜 착잡한 심정이 든다.



(도집봉 오르는 암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정맥길)



(도집봉에서 바라본 내장산)



(상왕봉 정상)



- 까치봉
잡초들 사이에서 억척스럽게 꽃을 피우고있는 야생화들을 바라보며 인적 끊긴 숲길을 걸어가면 짝을 찾는 새 소리들만 정겹게 들려온다.
입암산성과 까치봉으로 갈라지는 새재에서 까치봉 우회로를 버리고 숲길을 오르니 영산기맥 갈림길이 나오고 박성태씨의 안내판이 나무에 걸려있는데 언젠가는 다시 찾게될 지점이라 눈이 번쩍 뜨인다.
기맥의 힘든 가시밭길로 들어간 몇몇 분들의 표지기를 확인하고 희미한 정맥 길을 따라가면 국립공원답지 않게 키 큰 산죽들이 나타나고 잡목들이 무성하다.
길은 없어져서 음침한 안부로만 남은 소죽엄재를 넘고 옛 성터를 지나서 가파르게 이어지는 잡목 길을 오르고 바위지대들을 넘는다.
진땀을 흘리며 된비알을 오르면 새재에서 헤어졌던 일반 등로를 만나고 잠시후 험준한 암봉을 우회하다가 다시 암릉으로 붙는다.
급하게 올려치는 너덜길을 지나 주능선에 오르고 암벽을 따라 200여 미터 떨어져있는 까치봉(713m)에 올라서니 서래봉부터 장군봉까지 말발굽처럼 휘며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멋지게 보이고 짙푸른 내장산은 깊은 정적에 묻혀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장사를 바라 보고있으면 몇년 전 가을 산 잡지에 실린 기사를 읽다가 충동을 못 이기고 부랴부랴 배낭을 싸서 직접 차를 몰고 이른 새벽부터 서래봉 암벽을 오르던 기억이 떠올라 쓴 웃음이 나온다.



(새재)



(영산기맥 분기점)



(까치봉)



(까치봉에서 바라본,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 추령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헬기장을 지나고 암릉 지대를 조심스레 내려가며 차거운 골바람에 깜박거리는 졸음기를 떨군다.
산죽길 따라 내장산 최고봉인 신선봉(763m)의 넓은 헬기장에 오르니 울퉁불퉁한 서래봉 암벽들이 정면에 서있고 연자봉에서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봄꽃에 파묻혀 아름답게 보인다.
산불 초소를 지나고 급하게 떨어지는 너덜 길을 내려가다 반대에서 올라오던 산불감시요원을 만나는데 감상굴재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의외로 담배만 피지 말라고 하며 추령 가는 길까지 일러준다.
가파른 바위지대를 따라 연자봉(650m)에 오르고 철계단이 설치된 화사한 바윗길을 지나 암봉으로 되어있는장군봉(693m)에 오른다.
내장산 마지막 봉우리인 장군봉을 내려가면 급하게 떨어지는 산죽 길이 나타나고 내장사와 백양사로 갈라지는 유군치를 넘어 한적한 소나무길이 이어진다.
석탄 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갈림길들을 지나 49번 지방도로상의 추령에 내려서서 휴게소에서 찬 음료수도 마시고 식수도 보충한다.



(신선봉 정상)



(장군봉)



(장군봉에서 바라본 서래봉)



(장군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정맥길)



(추령)



- 송곳바위
시멘트 계단을 올라 현덕비를 지나고 "등산로아님" 이정표가 서있는 산길로 올라가니 잡목들이 무성하고 족적도 희미하며 내무부 도근점들이 간간이 나타난다.
노송들이 어우러진 바위지대를 따라가면 내장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내장사와 관광호텔 등 시설지구의 모습도 훤하게 내려다 보인다.
송곳바위가 보이는 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고 소주 한잔 마시며 뜨거운 태양 열에 지글거리는 산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냥 쉬고 싶어져 쉽게 일어나지를 못한다.
가파른 숲길을 지나 우회하는 길을 버리고 바로 송곳바위가 있는 550봉에 오르니 밑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나무들만 빽빽하고 조망은 막혀있다.
희미한 잡목 숲을 잠시 내려가면 10여 미터의 수직절벽이 나오는데 돌이끼들을 잡아가며 발 딛는곳을 거듭 확인하고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서 내려간다.



(송곳바위)



(550봉)



- 두들재
안부로 내려가 철조망을 따라 이어지는 가파른 산죽 숲을 오르니 햇빛은 뜨겁게 내려오고 산죽을 헤치며 일어나는 마른 먼지에 숨이 막히고 눈이 따가워진다.
530봉을 넘고 철망 따라 좌우로 길이 뚜렷한 복룡재로 내려가서 철망 문을 열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잡목들을 헤치며 434.9봉에 오르니 삼각점은 없고 구덩이만 파여있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중계소가 있는 553.8봉이 가깝게 보여 반가워진다.
사거리 안부를 지나고 가파른 바위지대를 휘돌아 암봉으로 이루어진 506봉에 오르면 뒤로는 송곳바위가 뾰족하게 보이고 내장산도 한눈에 들어와 절로 걸음이 멈춰진다.
덤불과 잡초들이 무성한 여시목을 지나고 사면으로 봉우리를 우회했다가 거꾸로 올라가 보니 무덤 한기가 있는 467봉인데 표지기들이 난무해서 오히려 방향이 혼란스럽다.
벌목 지대를 지나고 철조망 따라 흐릿한 잡목 길을 내려가면 시멘트 도로가 지나가는 두들재가 나오고 망대봉이라 부르는 553.8봉 정상에는 중계소가 서있어 흉물스럽게 보인다.



(망대봉)


- 개운치
마루금을 대신하고 있는 도로를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중계소에서는 라디오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도로에서는 지열이 올라와 숨이 턱턱 막힌다.
그늘에 세워놓은 차안에서 정답게 담소를 나누는 연인들을 보며 터벅터벅 도로를 올라가니 내장산의 전경이 거침없이 펼쳐지고 푸루른 내장저수지는 햇빛에 반짝거린다.
중계소 정문에서 철조망 따라 잡목과 덤불들을 헤치며 내려가면 개운치로 돌아 오르는 꾸불꾸불한 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앞으로는 고당산으로 올라가는 산줄기가 가파르게 이어진다.
낮으막한 헬기장에 올라 얼려온 캔맥주를 마시면서 구절재까지 가야할 지 개운치에서 끊어야할 지 궁리를 해봐도 시간이 애매모호해 판단이 서지 않는다.
산길을 내려가 무덤을 지나고 29번국도상의 개운치로 내려서니 젊은 남자 한 명이 떡취와 고사리를 한손에 들고 나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아마 내가 나물꾼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도로를 건너서 들머리를 찾아보며 구절재까지 갈 것인지 고민하고있는데 나물을 따던 남자 분 트럭이 정읍으로 내려간다고 해 그냥 덥석 올라타고 만다.
빨간 꽃으로 단장된 고갯마루를 지나고 고당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바라보니 아직 해는 중천에 떠있어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내장산 신선봉을 넘어온 한줄기 바람은 땀에 절은 목덜미를 시원하게 말려준다.



(개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