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지리산 (ⅰ)

무더운 여름날의 지리산 (칠선계곡-천왕봉-창암산-가채마을)

킬문 2006. 7. 18. 10:33
2002년 8월 29일 (목요일)

◆ 산행일정
남부터미널(23:00)
함양터미널(02:30)
추성리(03:09)
선녀탕(05:01)
칠선폭포(06:50)
삼층폭포(07:18)
마폭포(08:44)
천왕봉(10:00)
장터목(10:40)
소지봉(11:46)
이정표(12:44)
이정표(13:26)
창암산(14:22)
가채마을(15:17) 

◆ 산행시간
약 12시간 08분 

◆ 동행인
강환구

◆ 후기

- 추성리
심야버스에서 한잔 술에 눈을 붙혀 보지만 산행 시작할 때는 항상 몸이 개운치 않고 찌부득하다.
단풍님은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다가 술을 마셔서 더욱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
추성리로 들어가면 다른 지역 같지않게 좁은 시멘트 도로를 따라 민박집들이 다닥다닥하게 붙어있다. 함양군에서 개발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이렇게 길도 좁다고 하는데 개천쪽으로는 작은 집들도 무조건 일억 이상이라는 택시기사님 설명이다.(03:09)
용소갈림길을 지나니 오솔길로 이어지고 시커먼 어둠속으로 저 멀리 훤한 불빛 한개가 반짝인다.
외진 숲속에 세워져있는 야외등을 지나면 두지터가 나오고 전에는 화전을 일구며 살았을 이 산속의 외딴 마을도 도토리묵과 동동주를 파는 식당으로 변해있고 민박을 하는 듯 큰 슬라브 건물이 보인다.

- 선녀탕
철다리를 넘자마자 시작부터 안 좋은 단풍님이 30분만 자고 간다고 길가에 주저 앉는다.
같이 앉아 후래쉬를 끄니 시커먼 어둠속에서도 약간은 따듯하면서도 살랑살랑 다가와 피부에 와닿는 지리의 밤공기가 그리 낯설지는 않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약간 졸다보니 30분은 금방 지나가고 서둘러 단풍님을 깨운다.
영 맛이 좋지 않은 사람을 끌고 조금 더 가보지만 몇시간만 자고 갈테니 먼저 가라며 큰길에 대뜸 누워버린다.
할 수 없이 백무동에서 만나기로 하고 홀로 떨어지지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어두운 산길을 터벅터벅 한참동안 걸어가면 선녀탕이 나오는데 최근 내린 비로 물이 넘쳐 징검다리로는 어림도 없다.
주위를 뒤져서 큰돌 몇개를 집어 넣은 뒤에야 등산화를 적시지않고 간신히 건널 수 있다.
새벽 안개는 자욱하고 어둠속에서도 선녀탕의 시커먼 물빛이 공포를 자아낸다.
줄을 넘어 들어가니 바윗돌들 사이에서 등로를 찾기가 아주 힘들다.
짙은 안개속에서 표지기를 찾아가며 방향을 잡는데 바로 앞에있는 표지기도 보지를 못하고 이리 저리 헤메며 허부적 거린다.
큰소리를 내며 흘러 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계곡을 몇번 건너면서 날은 밝아오고 이정표가 보이는데 추성리까지 4.0km와 천왕봉까지 4.9km로 적혀 있으니 칠선계곡은 총 8.9km인 셈이다.

- 칠선폭포
한동안 계곡의 바위들을 넘으며 올라가면 큰 물소리와 함께 칠선폭포가 나오는데 수량도 많고 물줄기도 거센 것이 지리산을 대표하는 웅장한 폭포로서 손색없는 모습을 보여준다.(06:50)
이제야 표고 870m이니 아직도 올라갈 길은 한참이나 남아있다.
굉음을 뒤로 하고 계속 올라 가면 대륙폭포 이정표가 있는데 50여미터나 떨어져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왼쪽으로 지계곡을 건너면 하봉으로 올라갈수 있는 길이 연결될 것이다.(07:00)
올라 갈수록 아름드리 거목들이 많이 쓰러져있고 울창한 원시림의 모습을 보이지만 계곡사이의 비박하기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쓰레기들이 널려 있어 이맛살이 찌프려진다..
조금 더 오르니 멋있는 삼층폭포가 모습을 보이고 등로는 이끼낀 사면을 따라 이어지는데 곳곳에 미끄러운 곳이 많아 조심스러워 진다.(07:18)
폭포들을 지나고 한적한 곳에서 김밥을 먹고 소주 한잔을 마시며 칠선계곡을 바라본다.
주위로는 온통 맑은 물이 철철 흘러 내려가고 우람한 바위사이로 뻗어 내린 계곡은 발아래로 끝이 없이 내려가고 있다.
아! 우리의 강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구나!

- 마폭포
이제 능선으로 올라가는구나 생각하면 길은 다시 계곡으로 붙고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바위들을 나무뿌리를 잡고 오른다.
물줄기는 약간 가늘어진듯해도 계곡은 끝이 없이 이어지고 좌우로 초암능과 백무능선이 가깝게 올려다 보인다.
고도가 많이 높아졌음을 느낄 때쯤 계곡은 둘로 갈라지면서 오른쪽으로는 마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08:44)
폭포위로 오르면 폭포수도 멋있게 떨어지고 발밑으로 조망도 시원하게 펼쳐지지만 야영지에는 어김없이 인간들의 쓰레기가 널려져 있다.
이정표에는 고도가 1400m이고 천왕봉까지 1.6km라 하니 여기서부터도 무려 500m이상을 올려쳐야 한다.
계곡을 버리고 산길로 접어드니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고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 천왕봉
천왕봉 1.0km 이정표부터는 경사가 더욱 가파라진다.
얼마 전에 비가 온듯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숲을 지나서 너덜을 넘고 바위를 타고 오르면 물이 줄줄 흘러 내리고 진흙길은 미끄럽다.
고사목들이 자주 보이고 주능이 올려다 보이지만 천왕봉은 구름에 가려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사태가 나서 푹 꺼진 지역을 지나고도 바위길을 한참 오르면 철계단이 나타나고 곧 운무가 잔뜩 깔려 있는 주능선에 닿는다.
천왕봉(1915m)에 오르니 단체로온 초등학생들로 벅적이고 돌아가며 합창하는 만세소리로 시끄럽다.
오랫만에 오른 천왕봉에서 삷은 계란에 정상주 한잔을 마시니 갈길을 재촉하는듯 바람이 거세지며 구름이 몰려온다.

- 장터목산장
조금 내려가니 고등학교 체육부에서 온 것 같은데 인솔교사가 "배낭내리고 웃통을 다 벗는다. 실시!"하며 소리를 지른다.
상의를 벗고 알몸으로 정상에 올라 한국인의 꿋꿋한 기상을 느끼게해줄 모양이다.
내려가면서 등산객들을 많이 만나는데 방학이라 그런지 젋은 학생들이 유난히 많아 보인다.
제석봉을 지나 장터목산장에 내려가니 산장은 조용하고 발전기소리만 요란하게 울린다.(10:40)
컵라면을 먹으려다 식수만 보충하고 백무동으로 향한다.

- 소지봉
평탄한 돌길을 내려가면 백무동에서 올라오는 산행객들이 굉장히 많은데 천왕봉까지 5.8km 밖에 안되고 코스가 비교적 쉬워서 일것이다.
제석봉에서 바로 내려오는 등로를 지나고 유순한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망바위로 내려가면 찌프렸던 하늘이 개이며 초암능과 두류능선이 가깝게 나타나고 높이 솟은 동부능선은 긴 하늘금을 그리고 있다.
조금 내려가면 燒紙峰(1312m)인데 산위에서 종이를 태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없다.(11:46)
나무계단을 내려가 참샘에서 올라오는 가파른 길과 만나고 오른쪽으로 줄을 넘어 백무능선으로 진입한다.

- 첫번째 이정표
능선으로 들어가면 뚜렸한 길이 나타나고 간간이 낯익은 표지기들도 눈에 띤다.
수림이 우거져서 양쪽으로 조망은 되지않지만 걷기 편한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높낮이가 별로 없는 봉우리들을 넘고 첫 갈림길에서는 오른쪽으로 꺽어진다.
한동안 내려가면 칠선골의 물소리가 들려오고 안부상에 첫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벽송사 4.0km와 백무 2.0km 라고 적혀 있으며 칠선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보인다.(12:44)
사실 이능선은 벽송사하고는 별 관계도 없지만 아마 이 근처에서는 벽송사가 가장 유명하고 관광자원화 할 수 있어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부터는 "벽송사"라고 쓴 나무판들이 간간이 걸려있고 "지리산공비토벌루트"라고 새긴 프라스틱 판들이 계속해서 보인다.

- 두번째 이정표
안부를 넘으면서 약간 높은 봉우리들을 넘는다.
왼쪽으로는 덕평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렸하고 삼정마을이 간간이 보이며 앞으로는 창암산이 흐릿하게 올려다 보인다.
고도를 낮추며 내려가면 다시 안부에 이정표가 서있는데 하백무와 벽송사 내려가는 길로 표시되어 있지만 실은 벽송사가 아니라 두지터 내려가는 길이다.(13:26)
여기에서 공비토벌루트 표지판들은 백무동쪽으로 나란히 내려간다.
안부를 넘으면 이제 길은 희미해지고 잡목들이 많이 쓰러져 있어 지저분하다.
봉우리 하나를 넘으며 등로는 오른쪽으로 꺽어지고 가파른 경사길이 이어진다.

- 창암산
오전에는 비만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이제는 강렬한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 꽂힌다.
줄줄 흘러 내리는 땀을 딱아가며 오르막을 오르면 아직도 창암산은 멀게 보이며 조롱하듯 우뚝 서있다.
키를 넘는 풀숲을 헤치고 오르니 그늘이 없어 뜨겁기도 하지만 까시덤불들이 찔러대고 잡목들이 다투어 앞을 가로 막는다.
정상인듯한 봉우리를 오르며 나뭇가지를 잡고 뒤를 돌아본 순간 지리산은 온몸을 내세워서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만복대에서 성삼재를 지나고 천왕봉과 동부능까지의 그 기나긴 주능선과 덕평능과 백무능 그리고 두류능과 초암능이 나를 향해 일제히 도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 한여름 지리의 그 푸르름은 창연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잡초사이를 뚫고 올라간 곳은 정상이 아니었고 비슷한 곳을 몇번 더 올라야 비로서 잡목사이로 삼각점이 있는 창암산(923.3m) 정상이다.(14:22)

- 가채마을
가채마을로 내려가야 백무동이나 마천으로 가서 서울가는 버스를 타기가 편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지리산 전문가인 C씨와 P씨는 창암산에서 가채로 내려가는 길은 없다고 적어 놓았다.
올라 오면서 이렇게 한여름에 까시덤불이 심할 때는 길 없는 곳을 찾아 내려가느니 다시 안부로 돌아가 하백무로 가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서는 햇빛이 너무나 뜨거워 그늘로 조금 들어가 보니 북쪽으로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조금 내려가 무덤을 지나고 북서쪽 능선으로 들어서면 오랫만에 큰 암봉들이 나타나는데 한곳은 일부러 만들어 놓은듯 머리에 반듯한 삼각형 모양의 돌을 이고있어 이채스럽다.
암봉을 지나고 너른 전망바위에 서니 삼정과 마탄 그리고 추성 일대의 전답과 마을들이 평화스럽게 내려다 보인다.
계속 내려가면 침침한 오솔길은 사면으로 이어지고 산에서 내려오는 뚜렸한 길과 만난다.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니 묵은 임도인듯 풀이 무성하게 자란 길이 한동안 이어지고 가채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멘트 도로를 걸어가면 햋볕은 뜨겁게 내리 쬐고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로 숨이 콱콱 막혀온다.
몇백년은 됐음직한 느티나무를 지나서 어언 마을을 다 내려가니 마침 밴택시 한대가 들어 온다.(15:17)
이곳에서는 마천으로 나가는 것이 훨씬 가깝지만 땀에 찌들은 몸을 시원한 계곡물에 담글 욕심으로 백무동으로 차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