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지리산 (ⅰ)

지리 남부능선 (백무동-영신봉-삼신봉-성제산-평사리)

킬문 2006. 7. 18. 10:43
2002년 9월 12일 (목요일)

◈ 산행경로
남부터미널(22:00)
함양터미널(01:30)
백무동주차장(02:25)
가내소폭포(03:20)
세석산장(05:57)
영신대(06:48)
음양샘(07:58)
대성골갈림길(08:16)
한벗샘(09:23)
삼신봉(10:37)
삼신산정(11:16)
독바위(11:48)
상불재(12:20)
시루봉갈린길(14:37)
임도(15:33)
성제봉(16:46)
고소산성(18:09)
평사리(19:30)
19번국도

◈ 산행시간
약 17시간 05분

◈ 동행인
강환구

◈ 산행기

지리산의 못가본 여러 능선들이 생각나 3일동안의 긴 산행을 계획하고 단풍님과 둘이 떠난다.
백무동에서 불켜진 매표소를 긴장하며 고양이 걸음으로 통과하는데 물론 지키는 사람은 없다.
가내소폭포를 지나고 어두운 산길을 올라가면 별들은 쏟아질 듯 하늘을 수놓아 탄성이 나온다.
나무다리가 있는 곳에서 잠시 별들을 바라보다가 물소리를 들으며 30여분 새우잠에 빠졌다가 한기가 몰려와 일어난다.

바위들을 지나고 급한 경사길을 올라가면 일출이 시작되고 어슴추레한 세석산장에 닿는다.
우연히 치밭목 산장지기인 민병태씨를 만나 따뜻한 숭늉 국물을 얻어 마시고 영신봉을 오른다.
이슬에 흠뻑 젖으며 쑥부쟁이가 무성한 영신봉에 오르면 촛대봉이 멋있게 보이고 새벽을 깨어나는 지리의 연봉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주능에서 헬기장 옆으로 가파른 사면을 내려가면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라는 영신대가 숨어있다.
커다란 바위절벽 밑에 둥그란 돌들이 놓여있는 이 기도처는 그전부터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있고 앞에 서니 정말 神氣어린 느낌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었을 이곳에서 가족들의 안녕을 바라고 나 자신도 건강해서 오랫동안 산에 오를 수 있기를 빌며 엎드려 절을 올린다.



(영신대)




(가족들의 건강을 빌면서...)


헬기장에서 아침을 먹고 자연휴식년제로 막혀있는 철망을 넘어 빽빽한 관목사이로 희미한 길을 들어간다.
잡목과 산죽이 성가신 길을 내려가면 6.25때 여자빨치산 17명이 포위되었다가 최후에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돌제단이 있어서 숙연해진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속에 수없이 사라져간 우리의 젊은이들이 뛰어다녔을 이곳 지리산에 오늘 우리는 그저 단순한 등산객에 불과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끼낀 음양샘을 지나면 세석산장에서 내려오는 정규등산로와 만나고 곧 대성교갈림길을 지난다.



(남부능선)


청학동의 관문이라는 큰 암문을 지나고 산죽길을 한동안 내려가면 한벗샘 삼거리가 나온다.
숲길로 200여미터 내려가면 샘이 나오는데 작은 물방개 비숫한 곤충들이 물속에서 움직여 조금 께림직 하지만 마셔보면 시원하고 물맛도 좋아 모자라는 식수를 보충한다.
샘을 지나 무성한 산죽지대를 통과하고 이정표를 지나 봉우리들을 연속해서 넘는다.
산불 흔적이 있는 고사목지대를 오르면 돌탑과 오석이 서있는 삼신봉(1284m)인데 암봉에 서면 거림과 청학동일대가 잘 내려다 보이고 영신봉에서 시작하는 거대한 남부능선은 꿈틀대듯 이어진다.
낙남정간으로 뻗어 나가는 왼쪽능선을 확인하고 길을 서둔다.



(삼신봉)



(삼신산정 오르는 바위지대)


삼신봉을 내려가 단천골 갈림길을 지나고 봉우리들을 넘는다.
거친 암릉 협곡지대를 기어 오르면 삼신산정(1354.7m)인데 높아서인지 바람이 거세게 불어댄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 큰바위들 사이에 비를 피할 수 있는 비박터를 지나고 밧줄을 잡고 독바위에 오르면 마치 고릴라의 옆얼굴을 닯은 킹콩바위도 옆에 서있다.
산죽군락을 뚫고 출입금지로 막아놓은 능선길을 내려가면 청학동과 쌍계사를 잇는 상불재이다.



(킹콩바위)


산죽과 잡목으로 꽉 차있는 험로를 한동안 가다가 라면을 끓이고 소주 한잔씩을 하니 졸음이 온다.
내원재인 듯한 안부를 지나고 산죽군락을 통과하면 시루봉 갈림길을 지나는데 시루봉이 보이는 왼쪽능선은 누군가가 막아 놓았다.
잡목숲을 뚫고 나아가면 가시나무들이 많은 숲에서 길이 없어지는데 봉우리에 올랐다가 산죽사이로 내려가면 임도가 지나가는 원강재가 나온다.
임도 따라 가도 되지만 능선으로 붙으면 햇빛은 뜨겁게 내리쬐고 숨이 턱턱 막히는 오르막 길이 이어진다.
계속되는 봉우리들을 오르면 땀은 비오는 듯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까까머리같은 민등봉을 오르면 임도의 끝인데 산불초소는 태풍에 쓰러져 있고 간이화장실도 보인다.

완만해진 숲길을 한동안 지나 성제봉 안내판이 있고 태극기가 걸려있는 봉우리에 오르는데 정상은 아니지만 악양평야가 드넓게 펼쳐지고 전망이 시원하다.
봉우리를 내려가 조금 더 오르면 정상석이 있는 진짜 성제봉(1115m)이 나오는데 역시 전망이 좋다.
정상에서 내려가면 넓은 억새밭이 나오고 이정표가 서있다.
하늘거리는 억새사이로 넓은 초원지대를 지나면 바람도 시원하고 기분도 좋은데 갑자기 등산화가 양쪽 다 엄지쪽 볼이 뜯어져 깜짝 놀란다.
완전히 찢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하는데 다행히 산행하기는 큰무리가 없을 듯 하다.
신선대 암릉을 가로지르는 철계단과 구름다리를 건너면 19번국도까지 이어지는 낮은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악양평야와 섬진강)


한동안 봉우리들을 넘으면 무너진 산성터가 나오고 여기서 20여분 헤메다가 묘지사이로 길을 찾는다.
점점 고도를 낮추며 내려가지만 험준한 암릉들이 자주 나타나고 철계단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능선을 어느 정도 내려가면 19번국도와 섬진강이 보이기 시작하고 한창 복원공사중인 고소산성터에 내려가니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여기서도 길을 못찾고 헤메다가 성벽에서 뚜렸한 길 따라 내려가니 한산사가 나오고 포장도로가 연결된다.
원래는 성벽따라 19번국도까지 능선을 이어야 하는데 어둠속에서 아차하는 순간에 길을 놓쳐 버렸다.

한창 공사중인 최참판댁 한옥들을 지나서 깜깜한 길을 걸어가다 트럭을 얻어타고 19번국도까지 나온다.
계속 능선길을 따랐으면 도로 뒤의 악양군 관광안내판 뒤로 내려올 수 있었는데 큰도로로 걸어온 셈이니 기분이 착잡해진다.
버스를 기다리다 화개택시를 불러타고 내일 산행 초입인 오미리가 가까운 구례까지 간다.
시내에서 급한대로 등산화를 구입하고 한식집에서 늦은 저녁에 소주 한잔씩 하며 백무동에서 지리산을 넘어 남부능선을 타고 섬진강까지 내려오는 길었던 하루산행을 자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