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지리산 (ⅰ)

만추의 설악 (백암폭포-1347봉-대청봉-만경대)

킬문 2006. 7. 18. 13:32
2002년 10월 24일 (목요일

◆ 산행일정
동서울터미널(06:30)
오색시설지구(09:35)
백암리(09:50)
백암폭포(10:48)
1347봉(12:33)
1399봉(13:10)
대청봉(14:31)
1253봉(15:38)
양폭산장(16:56)
비선대(17:53)
설악동(18:26)
속초터미널(19:00)
동서울터미널(22:20) 

◆ 산행시간
약 8시간 51분 

◆ 후기

- 백암골
백암골의 맑은 물이 철철 내려오는 물레방아휴게소에서 조금 밑으로 내려가면 백암리 마을이다.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한적한 길을 올라가면 몇채 안되는 민박집들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정적속에 묻혀있고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지만 아무도 나와보지 않는다.
시멘트 길따라 올라가다 밭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폭포길을 여쭤보니 가까이 부르더니만 자세하게 일러주신다.
마지막 농가의 마당옆으로 들어가면 계곡을 따라 오솔길이 이어진다.
작은 계곡 같지않게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하고 막바지에 이른 단풍도 아직은 울긋불긋 아름답다.
30여분 올라가니 넓은 암반터가 나오고 백암폭포라고 쓰인 작은 이정표가 나무에 걸려 있다.
백암골을 따라 계속 올라가도 주능에 붙을 수 있지만 왼쪽의 폭포쪽으로 향한다.

- 백암폭포
한 100여미터 올라가면 오늘 계획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이고 일단은 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지나친다.
몇분 사면을 따라 가니 30미터 정도의 백암폭포가 나오는데 물줄기는 가늘지만 협곡사이의 붉은 단풍들과 어우러져 현란한 모습을 보인다.
동굴위로 떨어지는 물줄기에는 작은 무지개가 영롱하게 걸려있고 암벽의 물이끼는 푸르다못해 거무티티하지만 모든것이 잘 어우러진 한폭의 풍경화 같다.
누군가 쌓아놓은 돌탑에 돌 한개를 올리며 소원을 빌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니 사진기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워진다.

되돌아 나와 능선으로 올라가 황폐한 무덤들을 지나고 오름길은 계속된다.
퇴색하기 시작하는 단풍들과 이미 이파리를 떨군 나무들이 섞여서 설악의 만추는 지고있고 바람이 불때마다 고독에 지친 나뭇잎들이 허공으로 솟구친다.
왼쪽으로는 마산골에서 1399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오른쪽은 작은 지능선이 관모산으로 달리고 있으며 그 끝에 정상의 암봉들이 인상적으로 보인다.
언젠가 관모산의 암봉을 돌아 나오는 길이 굉장히 힘들었다는 산행기를 본 적이 있다.
계속 오르면 암릉들이 점점 많이 나타나고 몇백년은 됐음직한 적송들이 군락을 이루며 솟아있다.

- 1347봉
고도가 높아지면서 쓰러진 고사목들이 자주 보인다.
처음에는 뚜렸했던 길은 점차 희미해지고 그나마 낙엽들이 덮고있어 족적을 잃지 않으려 신경을 바짝 세운다.
급한 암벽을 어렵사리 돌아 오르면 마을에서 보이던 검은 암봉인 듯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 더 오르니 자연보호 표시석이 서있는 작은 봉우리에 닿는다.
이제서야 대청봉인듯 불쑥 솟은 산괴가 멀리 보이고 속초 앞바다가 검은색으로 내려다 보인다.
안부로 내려서서 희미한 능선길을 한동안 따르다 역시 자연보호 표시석이 서있는 1347봉에 오른다.
정상에 서니 관모산에서 대청으로 이어지는 능선 전체가 훤히 보이고 화채봉에서 송암산으로 뻗어 가는 능선이 뻔히 건너다 보인다.
산맥을 넘어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다바람에 갑자기 한기를 느낀다.

- 1399봉
무심코 앞으로 나서니 절벽이 나오고 우회하려니까 무성한 잡목사이에서 움직일 수도 없다.
되돌아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니 왼쪽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는데 오면서도 못보고 지나쳤다.
암봉을 길게 휘돌아 능선으로 붙으면 이제는 희미한 족적도 없어져 그냥 능선만 가늠하며 따라 간다.
연이어 크고 작은 암봉들이 나오고 계속 우회를 하면서 오르면 1399봉인데 철쭉등 관목들이 빽빽하고 마산골에서 올라온듯 희미한 표지기 하나가 왼쪽 사면에 붙어있다.

- 대청봉
능선으로 진행하면 철쭉과 잡목들이 길을 막고 옷과 배낭을 잡아 당긴다.
억지로 길을 뚫고 나아가니 억센 철쭉들이 덤벼들며 옷속의 피부에 마구 상채기를 그어댄다.
지긋지긋한 철쭉지대를 한동안 지나면 관목숲은 사라지고 키큰 나무들만 듬성듬성해 수월해지지만 이제는 저번 주에 무리했던 무릎관절들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산돼지들이 파헤친 길을 가다가 등로를 놓치면 여지없이 까시들이 찔러대고 넝쿨과 잡목들이 길을 막는다.
신경을 쓰면서 가다보니 둔전골과 관터골로 내려가는 들머리는 보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대청에 가까워지면서 길은 점점 뚜렸해지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은 사람을 지치게한다.
가까워지는 고함소리를 들으며 피뢰침이 서있는 봉우리에 오르니 대청봉과 대피소가 바로 앞에 나타난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바람부는 관목숲을 지나 대청에 오른다.
정상에서 마가목주를 한잔하니 오랫만에 맑은 날씨로 설악의 전경이 구석구석 잘 보인다.

- 만경대
어제 저녁 집앞의 분식집에서 배달갔다온 주인아저씨가 딱지도 않은 손에 일회용 비닐장갑만 끼고 싸준 김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서둘러 일어난다.
화채봉을 바라보며 능선으로 들어가면 유순한 길이 이어지고 올라왔던 관모산 능선이 옆으로 가깝게 보인다.
둔전골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나고 봉우리를 오르면 1253봉으로 만경대 능선이 갈라지는 곳이다.
초입의 바위에 앉아 소주 한잔을 마시며 십몇년전 이곳을 힘겹게 오르던 일을 기억해 낸다.
한계령에서 여기까지 오는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고 배낭에 욕심껏 줏어 넣은 잣은 또 얼마나 무거웠던지...
한적한 숲길을 한동안 내려가니 드디어 암릉들이 시작된다.
좌우로는 까마득한 절벽이고 발아래에는 내외설악의 수많은 암봉들이 솟아있으며 분재처럼 매달려있는 소나무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계곡으로는 양폭이 까마득하게 보이며 화채봉쪽으로는 굉음을 내며 몇십미터를 굽이굽이 떨어지는 칠선폭이 그 숨은 비경을 드러낸다.
경치에 취해 암릉을 건너다 보면 길은 마지막 암봉을 돌며 왼쪽으로 내려간다.
급사면을 내려와 물이 흐르는 미끄러운 절벽을 조심스레 통과하니 길이 없어져서 잠시 당황하지만 건천을 따라 내려가면 표지기가 있고 양폭산장이 내려다 보인다.
철줄을 잡고 급경사 바위지대를 내려가 산장의 화장실 앞으로 나온다.
산장에서는 나무를 때는지 연기가 자욱하고 날이 저물어오는 천불동 계곡을 훠이훠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