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지리산 (ⅰ)

비바람이 몰아치는 설악 (아니오니골-응봉능선-안산-갈직촌)

킬문 2006. 7. 18. 16:46
2002년 11월 7일 (목요일) 

◆ 산행일정
동서울터미널 (06:15)
구만교 (09:28)
협곡 (10:15)
폭포 (12:16)
응봉능선(13:42)
1369봉(14:09)
십이선녀탕갈림길 (14:41)
대승령갈림길 (14:47)
안산 (15:24)
능선갈림길(16:18)
갈직촌 (17:22)
인제터미널 (18:00)
의정부터미널 (21:35) 

◆ 산행시간
약 8시간 07분 

◆ 후기

- 계곡으로 들어가서
새벽부터 쏟아지는 겨울비를 보며 난감해 했는데 화양강휴게소에 오니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 덮혀 있다.
용대리에서 내려 남교리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구만교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니 "심방터횟집" 옆으로 오솔길이 이어진다.(09:28)
잡초가 무성한 길을 들어가니 심마니제단터가 나오는데 작은 불상옆에는 울긋불긋한 천조각들이 매어져 있고 소주 한병이 놓여있다.
계곡으로 들어가면 넓직한 검은 암반터위로 맑은 물이 쏟아져 내려오고 작은 소와 폭포들이 연이어 나타나 비경은 아니지만 호젓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다.
물줄기를 이리저리 건너면서 등로는 아주 희미해지고 길이 안보이면 바로 계곡을 따라 올라야 한다.
밤새 내린 비로 바위는 미끄럽고 얇은 어름이 덮고 있어 걸음을 딛기가 아주 조심스러워진다.
나무뿌리와 바위모서리를 잡고 까다로운 절벽지대를 지나며 쓸쓸한 계곡의 풍경은 계속 이어진다..
천둥이 울리듯 한바탕 회오리치는 바람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절벽위에 매달려있는 나무들이 일제히 몸을 흔든다.

- 날카로운 협곡에서 시험당하다.
드문드문 달려있는 ㅁ산악회의 표지기를 확인하며 올라간다.
넝쿨사이로 길은 있는 듯 없는 듯 하고 바위들을 이리저리 타고 넘으며 낙엽으로 덮혀있는 물에 몇번이나 빠진다.
한 협곡에 이르니 그만 갈길이 없는 듯 보인다. (10:15)
양쪽으로 다 가팔라서 그냥은 통과하기가 힘들 것 같아 한동안 고민하다 보니 오른쪽으로 능선을 이룬 절벽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차라리 저기를 올라가 능선으로 진행해볼까 하는 순간적인 생각에 급사면을 기어 올라가 나뭇가지를 잡아가며 가파르고 좁은 바위사이로 올라가니 밑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오버행바위라 쉽지가 않고 발밑이 까마득하다.
포기하고 다시 내려와 왼쪽의 너덜로 올라가서 길게 우회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협곡을 통과하고 계곡으로 내려선다.
가파른 절벽을 올라갔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가슴을 쓸어 내린다.

- 상류의 큰 폭포를 지나서
한동안 올라가면 갑자기 조용해지며 물길이 끊어져 버린다.
이제 상류에 다 왔다고 생각하고 건천을 올라가니 잔돌들만 있어서 걷기에 편하지만 잠시후 물길은 다시 시작된다.
계속 오르면 20미터 정도의 큰 폭포가 나오고 길은 폭포를 비켜서 산사면을 길게 우회한다. (12:16)
낙엽덮힌 길을 따라가면 건천에서 우측능선으로 오른 흔적이 있는데 표지기는 계곡쪽으로 걸려 있다.
계곡을 계속 올라가니 어느지점부턴가 길이 사라지고 표지기도 안 보이며 우측의 능선쪽으로 희미한 족적이 있는듯 하다.
지도상에는 계곡의 상류에서 오른쪽으로 치고 올라가 응봉능선으로 붙게끔 되어 있다.
어차피 응봉쪽으로 올라갈 것이니 이쯤에서 계곡을 버리고 능선으로 붙어도 무난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 간신히 주능선에 닿다.
족적이 있을 것 같은 능선을 조금 오르니 길도 없고 잡목과 쓰러진 거목이 너무 많아 진행하기가 힘들다.
이리저리 길을 내며 올라가면 옆에서 올라오는 능선과 만나며 약간 길이 순해지지만 그곳도 잠시이고 길흔적은 이내 없어진다.
잡목과 넝쿨을 뚫고 비탈을 오르니 왼쪽으로는 큰 암봉이 솟아있고 그 밑으로 얼어붙은 물줄기가 길게 형성 되어있어 혹시 능선에서 저 암봉을 만나는 게 아닌가하는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얼굴을 마구 찔러대는 잡목숲을 지나고 작은 암릉들을 몇개 지나면 오른쪽으로는 응봉의 험준한 암봉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힘겹게 한 봉우리에 오르니 그제서야 능선이 올려다 보이는데 잡목은 덜하지만 마른 넝쿨들이 빽빽해 성가시다.
이리저리 가지들을 헤치고 잔설을 밟으며 능선에 오르니 응봉은 지척이고 올라오면서 보았던 큰 암봉은 다행히 능선에서 벗어나있다.(13:42)
잡목이 듬성듬성하고 길흔적도 간간이 있어 걷기에는 다소 편해지지만 역시 넝쿨들이 많아 진행하기가 힘들다.
능선만 가늠하고 한동안 오르면 주능선이 앞에 보이는데 짧은 길이지만 관목과 마른 넝쿨로 꽉 차있어서 피해갈수가 없다.
이리저리 가시넝쿨을 돌고 나무가지를 부러뜨리며 낮은 포복을 하고 힘들게 올라 드디어 1369봉 바로 밑의 주능선에 닿는다.(14:09)

- 안산에 올라서
원래는 여기에서 왼쪽의 북동능선으로 진행해 백담사로 내려갈려는 계획이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시간이 많이 지연되었고 날씨가 너무나 좋지않아 아는 길로 하산하기로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능선을 피해서 김밥을 먹고 다행히 주능선에 오른 것을 안도하며 소주 한컵으로 몸을 덥힌다.
이제는 다소 시간이 늦어지더래도 정규등산로에만 들어서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한적한 길을 잠시 내려가니 십이선녀탕 진입로가 나오고 조금 더 올라 대승령 갈림길에 닿는다. (14:47)
갈림길을 지나 안산쪽으로 진행하면 하늘이 더 어두어지더니 드디어 빗방울들을 떨구기 시작한다.
산자락을 빠르게 넘어가는 구름들을 쳐다보며 능선에 오르니 불어오는 비바람에 눈도 못뜰 지경이고 몸이 휘청댄다.
여름에는 야생화로 천국을 이루었을 안부와 헬기장을 지나고 봉우리를 넘어 안산으로 향한다.
얼음이 잔뜩 얼어붙은 바위틈을 기어 오르고 비바람을 맞으며 급사면을 넘어서 안산(1430.4m)에 오른다. 그 전망 좋았던 정상에 서니 사방은 컴컴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찬바람을 못이겨 바로 내려온다.

- 갈직촌으로 내려오다.
삼거리로 내려와 왼쪽길로 들어가 봉우리를 빙 돌아 한계고성 갈림길을 지나고 북서쪽의 능선으로 진입한다.
뚜렸한 길이 이어지지만 눈이 쌓인 곳에는 발자국이 없고 낙엽으로 길이 덮혀 있어 신경을 쓰게 된다.
일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지만 사방이 어두어지고 빗방울이 굵어져 마음은 바뻐진다.
십이선녀탕으로 내려가는 뚜렸한 갈림길을 지나고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1257봉을 향하던 능선은 큰 암봉을 우회하면서 남서쪽으로 슬그머니 방향을 바꾼다.
낙엽이 깔려있는 비탈길을 내려가면서 몇번이고 엉덩방아를 찧는다.
어느정도 고도를 낮추니 바람도 잠잠해지며 능선길은 마을뒤의 오솔길처럼 부드러워진다.
묘지들을 지나고 달리듯 편한 길을 내려가면 넓은 초지가 나오고 바로 민가 앞으로 나와서 시멘트 길과 만난다.
조금 내려가면 내설악 생수공장이 있고 석황사를 지나면 한계령으로 오르는 44번 국도상의 갈직촌으로 내려간다.
마침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운좋게 인제에 도착하니 바로 의정부버스가 연결된다.
길옆의 포장마차에서 어묵 몇개와 더운 국물로 힘들었던 하루의 산행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