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지리산 (ⅰ)

계절이 지나가는 설악 (관터골-화채봉-피골능선)

킬문 2006. 7. 18. 13:41
2002년 10월 31일 (목요일) 

◆ 산행일정
동서울터미널(06:30)
오색시설지구(09:21)
관터골입구(09:43)
각두골 합수점(10:04)
관터골상류(11:19)
대청봉(12:36)
1253봉(13:52)
화채봉(14:09)
피골능선갈림길(14:30)
무명봉갈림길(15:06)
피골폭포(16:05)
피골능선(16:45)
설악동(17:36)
속초터미널(19:00)
동서울터미널(22:25) 

◆ 산행시간
약 8시간 15분 

◆ 후기

- 관터골
홀로 타고가는 버스라 관대리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하려다가 한적한 가을길을 걷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오색에서 내린다.(09:21)
시설지구에서 도로 따라 양양쪽으로 천천히 내려가 민박집들을 지나고 관대교를 건너면 바로 관터골 입구인데 철조망이 처져있고 철문이 굳게 닫혀있다.(09:43)
철조망을 돌아 들어가니 계곡 우측으로 넓직한 길이 연결되며 계곡도 백암골보다 훨씬 크고 큰 암반사이로 시원스럽게 물이 내려온다.
전에는 마을이 있었는지 집터들이 자주 보이지만 일주일전하고는 다르게 단풍은 사라지고 생기 잃은 낙엽들만 깔려있어 스산한 분위기가 든다.
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관터골과 각두골의 합수점이 나오고 각두골쪽은 물줄기는 가늘어도 좁은 암반사이로 작은 폭포를 층층이 만들며 내려오는 모습이 운치가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10:04)

- 관터골과 각두골
물을 건너고 관터골과 각두골을 나누는 능선으로 붙으면 급한 오르막 길이 시작된다.
뚜렸한 능선길에는 군용전화선이 따르고 곳곳에 통신케이블을 매설해 놓아 이정표 역할을 한다.
무성한 낙엽을 밟으며 오르다 땀을 딱으니 뒤로는 점봉산이 우뚝하고 단목령을 지나 북암령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물결이 도도하게 흐른다.
아름드리 노송들이 쭉쭉 뻗어있는 길을 오르면 끝청능선이 평행선을 달리고있고, 오른쪽으로는 백암골에서 1347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이 뚜렸하게 보이며, 대청의 옛 대피소는 햇빛을 받아 흰색으로 반짝인다.
끝이 없이 이어지는 능선을 오르고 암봉으로 이루어진 1115봉을 왼쪽으로 우회하며 사면을 길게 돌아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관터골의 상류에 도착한다.(11:19)
암반사이에 고여있는 맑은 물에는 퇴색한 이파리들이 둥둥 떠있고 화려했던 나날들을 기억하는듯 잔물결에 이리저리 몸둥이를 흔들어댄다.
계곡을 따라 능선으로 바로 오르는 또 다른 등로를 찾아 보지만 뚜렸한 족적은 보이지 않는다.

- 대청봉
물을 건너서 머리위로 올려다 보이는 능선을 바라보며 대청까지의 급사면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두터운 낙엽위로는 며칠전에 내린 잔설이 깔려 있어 자주 미끄러지고 헛발짓을 해댄다.
바로 위에 보여서 금방 갈 것 같은 능선은 아무리 올라가도 계속 머리위에서 머물고 있다.
진땀을 흘리며 오르면 관목숲이 보이기 시작하고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계속 오르니 예상했던대로 피뢰침이 서있는 대청의 전위봉과 연결된다. (12:25)
관모봉쪽에서 올라오는 능선은 바로 옆에 있어 구분하기 힘들고 내려가면서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만큼 바짝 붙어 있다.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대청봉에 오르니 몇사람밖에 보이지 않는다.(12:43)
일주일만에 다시 만나는 정상석 한번 쓰다듬어 주고 정상주 한컵 마시고는 바로 내려온다.

- 피골능선
화채봉을 향하여 능선으로 들어가면 북향이라 그런지 눈이 예상외로 많이 쌓여 있다.
2-3일전에 내려간 발자국은 있는데 키가 꽤 큰 사람인지 보폭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정강이까지 빠지는 눈속을 통과하면 금방 등산화 속으로 눈이 들어온다.
만경대 능선이 시작되는 1253봉을 지나고 계속 진행하면 화채봉(1320m) 바로 전의 큰 암벽이 나오는데 송암산 능선이 갈라지는 곳이다.
송암산으로 가는 희미한 길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암봉을 돌아 칠성봉쪽으로 향한다.(14:09)
산사면의 암릉지대를 길게 돌면서 봉우리 하나를 오르면 전망이 아주 좋은 전망대 바위가 나온다.
바위에 서면 조망이 훤히 트여서 만경대와 칠형제봉 그리고 공룡능선과 천화대등 외설악의 암봉들이 내려다 보이고 칠성봉에서 집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가깝게 보인다.
봉우리에서는 칠성봉쪽으로 급한 내리막 길이 시작되고 잠시 내려가니 줄로 막아놓은 갈림길이 나온다.(14:30)

- 피골폭포
일찍 산행을 끝낼 것 같은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들어서면 비교적 뚜렸하고 유순한 길이 이어지고 넓게 펄쳐진 속초 앞바다가 시원하게 보인다.
낙엽이 깔려있는 길을 한동안 내려가니 토왕골 쪽으로 하산하는 길이 하나 보이는데 따라가 보니 밑으로 계속 이어진다.
평탄한 길을 내려가다 화채봉을 바라보며 사과 한개를 먹으면 시간도 이른데 송암산쪽으로 길게 돌아서 둔전골로 내려 갔을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계속 내리막 길을 가면 한 봉우리 앞에서 두갈래 길이 나오고 s산악회의 표지기가 달려있는 봉우리쪽으로 올라간다.(15:09)
희미해지는 길을 올라 봉우리에서 직진을 해보는데 조금 가다가 아주 희미한 족적만 보이고 길이 없어진다.
다시 빽해서 보니 s산악회의 표지기는 정상에서 오른쪽 산밑으로 걸려 있다.

굉장히 가파른 급사면을 내려가면 길은 없어도 표지기는 계속 달려있고 바위와 잡목사이로 최근 지나간듯한 흔적이 보인다.
점점 내려가면서 화채봉과 송암산 능선의 1216.4봉 사이에 형성된 북쪽 절벽지대가 가깝게 나타나고 물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불안한 마음으로 낙엽에 미끄러지며 나뭇가지를 잡고 조심스레 내려가 보니 역시 피골폭포의 상단부이다.
정면으로는 흰눈만 쌓여있는 건천이 거의 몇십미터나 수직으로 드러나있어 공포감을 주고 그 옆에는 처음으로 시작되는 폭포가 수직으로 물을 떨어뜨리고 있다.
내려온곳은 V자 협곡사이에 두번째로 형성된 폭포의 상단부로 내려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s산악회 사람들은 어디로 어떻게 내려갔을까?
잠시 동안에 여러 생각들이 교차되지만 결론을 내리자마자 머뭇거리지 않고 내려왔던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16:05)
홀로산행에서 설사 자일이 있어도 미끄러운 폭포를 내려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내려오기도 힘든 가파른 사면을 올라가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처음부터 능선으로 직진하지 못한 우유부단함을 후회해 보지만 한쪽으로는 과감하게 폭포를 따라 내려가지 못하는 무력감도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올라가 흐릿한 능선방향으로 직진한다.(16:30)

- 설악동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능선따라 한동안 내려가면 어느 순간 길이 없어진다.
사방으로 길을 찾다보니 왼쪽으로 뚜렸한 다른 능선이 올려다 보인다.
올라가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아 작은 계곡으로 무작정 내려갔다가 앞의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니 너무나 좋은 오솔길이 기다리고 있다.(14:45)
잠시 생각해 보면 모든것이 금새 확연해진다.
아까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봉우리를 우회했어야 하는데 산악회 표지기만 보고 봉우리로 올라간 것이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S산악회는 봉우리에서 길이 없으니까 계곡으로 떨어져서 자일이라도 걸고 내려 갔을 것이다.
점점 일몰시간이 다가와져 바쁜 걸음으로 내려가면 권금성 케이블카장과 안락암이 건너다 보이고 대기번호를 부르는 마이크 소리도 가깝게 들린다.
혹시라도 토왕성 폭포가 보일까 두리번거려도 찾을 수는 않고 오른쪽으로는 861봉에서 송암산을 지나 물치리로 내려가는 능선이 부드러운 하늘금을 긋는다.
동쪽에서 북으로 점점 방향을 바꾸니 설악동의 호텔들과 여관들이 가깝게 있고 피골이 합류하는 쌍천이 내려다 보인다.
고도를 낮추며 내려가면 점점 야산의 모습을 띄기 시작하고 호우로 무너져버린 지계곡들이 자주 보인다.
완만한 능선을 계속 내려가면 설악장여관의 주차장으로 나오게되고 맞은편의 리조텔에서는 단체로온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다.(17:36)
어둑어둑해지는 C지구 여관촌을 빠져 나오니 시내버스가 금방 내려오고 하루의 산행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