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 (Ⅰ)

명지산의 겨울과 설능들 (백둔봉-명지남봉-귀목봉-오뚜기고개)

킬문 2006. 10. 28. 00:20
2002년 12월 12일 (목요일) 

◈ 산행일정
의정부터미널(06:40)
익근리(09:21)
돌탑(11:22)
백둔봉(12:03)
백둔리갈림길(12:52)
명지2봉(14:15)
귀목고개(15:27)
귀목봉(16:07)
청계산갈림길(16:38)
오뚜기고개(17:08)
무리울(18:10)
47번국도(18:36) 

◈ 산행시간
9시간 15분 

◈ 후기

- 익근리
가평 가는 버스는 오늘도 말썽이다.
느릿 느릿가며 뒷차를 먼저 보내는 것을 보고 기사에게 빨리 가자고 하니 차가 고장이란다.
문득 지난 겨울에 이 버스를 타고 갔다가 용수목행 첫버스를 아슬아슬하게 놓쳤던 쓴 기억이 들쳐진다.
어렵사리 기사를 닥달하고 안절부절하며 간신히 가평에 도착한다.
익근리에서 들어가 마지막 민가에서 다리를 건너 초입부를 찾는다.(09:21)
집 옆의 희미한 눈길로 들어가 조금 올라가니 잡목들이 쓰러져 있고 진행하기가 힘들다.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20여분 까먹고 화장실뒤로 들어가니 뚜렸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 주능선
바람은 살을 에이는듯하고 눈길은 미끄러워 자주 뒷걸음친다.
주위는 온통 설국이고 화악산과 응봉의 정상은 흰대머리새의 머리처럼 그렇게 백색이다.
헉헉대며 오르다 보니 손목이 허전하고 몇년동안 산에서 고락을 같이한 시계가 안 보인다.
부리나케 뛰어 내려가니 자켓을 벗었던 곳에 주인을 기다리며 덩그라니 떨어져있다.
시계때문에 짧은 겨울날의 황금같은 25분을 또 허비하니 어찌 오늘의 일정이 불안해 진다.

작은 돌탑이 서있는 주능선에 오르면 백둔봉이 멀리 보이고 맞은편 사향봉에서 명지산을 거쳐 명지2봉으로 이르는 능선이 제법 웅장하게 보인다.(11:22)
나무로 막아 놓은 쪽은 구나무골로 떨어지는 지능선이 길게 이어지며 옹기종기 모여앉은 민가들이 평화스럽게 보인다.
작은 봉우리를 오르고 눈 덮힌 암봉을 어렵게 통과한다.
흰 눈은 온산을 뒤덮고 있고 또 등산로도 묻혀서 찾기 힘들다.
간혹 걸려있는 표지기를 보며 진행해 보지만 발목까지 빠지는 눈속에서 이리저리 미끄러지며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 백둔봉
가파른 봉우리를 올라서니 그제서야 백둔봉이 바라다 보이고 명지남봉에 이르는 깍아지른 능선이 기를 죽인다.
한구비 더 돌아 작은 철판이 서있는 백둔봉(974m)에 이르니 그나마 따뜻한 햇살이 반겨준다.(12:03)
12시쯤에는 명지남봉에 오르리라 생각했지만 지금에야 백둔봉에 올랐으니 청계산을 넘어 하산하리라는 생각은 반쯤 물 건너간 소리이다.
명지남봉에서 명지산 정상을 다녀오는 것이 어떨까 고민을 했으니 사람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다.
헬기장을 넘고 백둔리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그만 쓸데없는 짓을 하고 만다.(12:50)
마을 내려가는 곳이라고 판단을 하면서도 혹시 봉우리를 길게 우회하는 건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쑥 내려갔다가 20여분 진땀을 흘리며 다시 올라온다.
낙엽속에 희미한 길을 내려가니 최근에 지나간듯한 발자국이 보인다.
이제 러쎌을 안해도 되니 어느정도 고생길은 접었나...?

- 명지2봉
가파른 능선길이 다시 시작된다.
앞선 발자국은 암봉들을 우회하며 이쪽 저쪽으로 사면을 따라 이어진다.
맞는 길도 있고 맞지 않는 길도 있지만 선답자의 발자취를 쫓는 것이 한결 유리하다.
백둔리에서 명지산으로 올라간 이 홀로 발자국의 주인은 얼마나 외롭게 이길을 올랐을까?
계곡에서 연교막을 지나 올라오는 삼거리에는 이정표가 서있고 이제부터는 길이 뚜렸하다.
이리 저리 바위들을 돌아 오르면 명지남봉(1250.2m)에 이르고 흑염소들이 놀던 바위에 오르니 주위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일망무제로 내려다 보이고 귀목봉과 청계산이 유달리 뾰족하게 솟아 있다.(14:15)
아침에 같이 시작됐던 태양은 이제 연인산 위로 미끄러져 앉아있고 가느다란 햇살만을 약하게 뿌려댄다. 정상주 한잔을 하고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니 도망갔던 염소들은 바로 바위 밑에서 빤히 산객을 쳐다보고 있다.

- 귀목봉
눈이 많이 쌓인 주능선을 내려가면 북사면의 응달에는 어김없이 찬바람이 불어대고 손가락이 시려온다.
아재비고개 갈림길을 지나니 귀목봉은 바로 앞에 보이고 국망봉에서 이어지는 기나긴 한북정맥의 설능이 장쾌하게 밀려온다.
몇년전에는 엉덩이 썰매를 타고 희희낙낙대며 내려왔던 급경사 길을 오늘은 나뭇가지를 잡고 홀로 쓸쓸이 미끄러지며 내려간다.
귀목고개를 지나고 내려오며 보았던 세네굽이 경사길을 올라간다.(15:27)
6.25사변때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서 소복귀신이 자주 나타난다는 이길을 나는 그저 무심하게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이제 점점 지고있는 저 태양과 저 지겨운 눈밭속에서 오늘 나는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느꼈는가...
서너평 좁은 귀목봉(1036m)에서 정맥길을 바라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재촉한다.(16:07)

자일을 잡고 봉우리를 내려와 뒤돌아 보면 뾰족하던 귀목봉은 어느덧 펑퍼짐하고 단순한 봉우리로 바뀌어져 있다.
장재울 계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다다르니 내려간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시간이면 가까운 장재울로 내려가는 것이 안전하지만 웬지 산행을 더 이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에 걸음을 계속한다.
쓰러진 억새밭을 지나고 한북정맥에 합류하니 많은 표지기들이 반긴다.(16:38)
여기서 청계산까지는 4km 로 빨리 가도 한시간은 잡아야 하고 해가 지면 하산하기도 힘든 법이라 과감하게 강씨봉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오뚜기고개
방화선을 따라 급경사 길을 내려간다.
강씨봉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제일 힘들다고 하는 그 가파른 길을 훠이훠이 빠른 걸음으로 내려간다.
내려와서 보면 층층진 봉우리들이 올려다 보이는 것이 꽤나 가파르다.
헬기장을 지나고 오뚜기고개에 내려가니 서서히 해는 져가고 누군가 피웠던 모닥불 흔적 따라 온통 쓸쓸함이 배어있는듯 해 가슴이 저며온다.(17:08)

세번째로 오뚜기고개를 지나가지만 꼬불꼬불하게 내려가는 6km 의 군사도로는 사람의 진을 빼고 넌더리나게 하는 길이다.
어느덧 해는 져버리고 반사되는 흰 눈길을 후래쉬도 켜지않고 내려가니 뾰족한 청계산의 뒤통수가 넌지시 객읋 내려다 보고있다.
하염없이 내려가면 강씨봉 골짜기의 채석장이 흉물스럽게 보이지만 겹겹이 내려앉은 지능선의 설경들은 어둠속에서도 또렸하게 드러난다.
눈을 맞고 서있는 키작은 나무에서 언뜻 앉은 사람의 모양이나 동물들의 모습이 연상돼 흠칫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이제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가 생각하며 쓴웃음 한번 짓고 발걸음을 빨리한다.

- 일동
돼지소리가 들리는 무리울 마을에 내려와 택시를 부르려니 추위속에 밧데리가 나간듯 불통이다.(18:10)
길은 온통 얼어있고 차도 못 들어올 것 같아 그냥 걷기로 한다.
전에는 아름다왔다고 하는 이 무리울계곡도 양돈을 한 이후로 물이 썩어가고 사방이 돼지냄새로 역겹다. 여기저기서 합창하듯 짖어대는 개소리를 들으며 국도로 내려가니 서울가는 차들이 교통체증으로 느릿느릿 지나간다.
택시를 기다리다 일동터미널쪽으로 그냥 발길을 돌리니 이제는 양쪽 종아리가 뻐근해진다.
세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털레털레 고개를 넘으면 콧물이 흐르고 볼이 뻣뻣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