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백두대간 20구간 (비로봉-국망봉-마당치-고치령)

킬문 2006. 7. 10. 12:54
2001년 2월 1일 (목요일) 

◆ 산행일정
죽령(04:08)
제2연화봉
천체관측소(06:48)
1383봉(06:58)
제1연화봉(08:15)
비로봉(09:21)
국망봉(11:40)
1272봉(13:15)
연화동갈림길(15:40)
마당치(17:20)
고치령(20:08)
좌석리(20:40) 

◆ 산행시간
약 16시간 32분 

◆ 후기
출발하기 전에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모 산악회에서 며칠전에 대간을 다녀와 길이 잘 딱여있다고 한다.
그러나 매표소를 지나 관측소 가는 시멘트길로 들어서면 초입부터 눈이 엄청 쌓여있어 러셀을 하면서 가는데 날도 춥고 바람도 거세다.
제2연화봉(1357.3m)은 어둠속에 슬쩍 보며 지나가고 천체관측소를 지나 1383봉에서 희방사길과 만난다.
가파른 계단으로 제1연화봉(1394.3m)에 오르니 온산에 설화가 만개해있고 상고대가 눈부시지만 역시 눈위에는 발자국 하나 없다.
비로봉(1439.5m)에 올라가면 악명 높은 말바람에 몸은 날아갈듯 하고 뺨은 찟어지는듯 아려온다.
힘든 오르막 암릉을 올라서 국망봉(1420.8m)에 가니 여기부터는 바람이 옆으로 부는데 몸의 중심을 잡을 수도 없고 눈을 뜰 수도 없다.
거친 암봉인 상월봉(1394m)에 올라가면 경치는 좋지만 내려가는 바위길이 위험해서 보조자일이 있어야 하겠다.
늦은맥이고개를 넘고 구인사갈림길인 1272봉을 지나며 눈은 더욱 많이 쌓여있다.
우회하지도 못하고 피해갈 수도 없고 바로 앞에는 표지기가 있지만 허리까지 빠지는 눈에 꼼짝을 못한다.
교대로 러셀을 하며 있는 힘을 다해도 1시간에 고작 1km 정도도 못가는 것같다.
한동안 내려가니 이정표가 있고 오른쪽으로 연화동 내려가는 방향인데 길은 역시 흔적도 없다.
여기서 탈출을 해야할 것인가 일행들과 상의해도 그냥 가자는 의견이 많아 지나쳤지만 나중에는 두고 두고 후회를 했다.
하지만 나중에 김대장은 모르는 길로 탈출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고 한길 넘는 눈속에 빠지면 죽는 것 이라고 엄포를 놓으며 잘한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어느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결국 살아서 산을 내려왔으니 망정이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지름길로 내려오지 않은 것은 목슴을 잃는 실착이었을 것이다.
눈밭을 뚫으며 마당치에 내려서니 서서히 날은 저물어오고 종이조각에 고치재까지 1시간이라고 적혀있지만 이런 눈속에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일행들과 후레쉬를 준비하고 마지막 남은 간식들을 털어넣으니 찬바람이 몰아치며 두려운 가운데서도 비장감이 든다.
다행히 마당치부터는 희미한 족적이 있고 길이 비교적 좋아서 빠른 속도로 산길을 간다.
형제봉 갈림길을 지나고 완만해진 눈길을 가다가 한번 길을 잃었지만 표지기를 보며 길을 찾는다.
이런 컴컴한 겨울산에서 표지기는 생명의 파수꾼임을 다시한번 실감해 본다.
고치재에 닿으니 저녁 8시가 넘었고 얼어붙은 비포장길을 한동안 내려가니 타고온 승합차가 보인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김대장은 전화도 안되고 너무 늦게까지 내려오지 않아 조난신고를 할려고 했다 한다.
눈이 너무 많으면 국망봉에서 내려왔어야 했다고 하는데 어느 산꾼이 낮 12시도 안됐는데 산을 내려가겠는가?
17시간 가까이 눈밭에서 딩굴다가 따뜻한 차를 타고 내려가면 마치 끔직한 사선을 넘은 것처럼 정신이 얼얼하다.
대간산행중에서 가장 위험하고 힘들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