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금남호남.호남정맥

금남정맥 5구간 (인대산-육백고지-봉수대-작은싸리재)

킬문 2006. 7. 12. 23:39
2003년 6월 19일 (목요일)

* 산행일정
강남터미널(06:30)
금산터미널(08:45)
배티재(09:08)
570봉(09:56)
오항고개(10:36)
620봉(11:38)
인대산(11:53)
590봉(12:13)
622.7봉(12:40)
백령고개(14:00)
615봉(14:42)
육백고지(15:10)
713.5봉(16:17)
게목재(16:40)
770봉(15:27)
786.6봉(18:08)
봉수대(19:03)
작은싸리재(19:22)
중리
금산터미널(20:40)
대전터미널(21:40)
강남터미널(23:15)

* 산행시간
약 10시간 14분

* 후기

- 배티재
천안을 벗어나면서 기어이 약한 빗방울이 버스창가에 묻어나기 시작한다.
비때문에 일주일을 쉰 후라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북상중이라는 메가톤급 뉴스에도 짐짓 태연한척 떠나온 길인데 금산에 도착하니 굵은 빗줄기가 주룩주룩 내린다.
트렁크속의 자기 우의를 꺼내줄려는 마음씨 좋은 택시기사를 돌려보내고 넣고 다니며 사용하지도 않는 고어텍스자켓을 입고 고갯마루의 절개지를 오른다.
통신탑을 지나고 진산휴양림의 임도를 보며 능선을 오르면 빗방울에 몸을 적시는 나무들은 온통 생기에 들떠있고 발끝에 스치는 풀들은 몸둥이를 곳추세우고 이파리를 흔들며 반긴다.
봉우리 하나를 힘겹게 오르다 너무나 덥고 답답해 고어텍스를 벗고 그냥 비를 맞으니 시원하고 맨몸이 가뿐해진다.

- 오항고개
봉우리들을 넘고 평평하게 다져놓은 정상에 나무 한그루가 있는 570봉에 오르면 오랫만에 시야가 트이고 대둔산이 잘 보일것 같지만 쏟아지는 빗줄기는 모든것을 가려 버린다.
반반하고 좋은 길따라 내려가다 숲길로 들어가니 얼핏 구름사이로 오른쪽에 더 높은 능선이 보여 길을 다시 확인해 본다.
함초로이 비를 맞고있는 하늘나리들을 바라보며 인삼밭같은 초지를 지나면 수많은 새끼더덕들이 넝쿨들을 뻗어대며 서로 몸을 비벼대고 있다.
작은 나무의자들이 있는 봉우리들을 지나고 잡초를 뚫고 석목리와 오항리를 잇는 635번 2차선 지방도로상의 오항고개로 내려선다.
벚꽃동산옆의 빈 정자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지도를 확인하니 하염없이 내리는 이 빗줄기를 뚫고 싸리재까지 갈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 인대산
오른쪽으로 솟아있는 459.8봉을 쳐다보며 시멘트임도를 따라 고개까지 올라가서 가파른 절개지를 오르니 459.8봉을 생략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아쉬워진다.
잡목들이 빽빽한 희미한 길을 헤쳐가다 무덤가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있으면 구름이 잠시 걷히며 장벽을 두른듯 층층히 솟아있는 대둔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사진기를 꺼내는 사이 재빨리 사라져 버린다.
헬기장이 있는 620봉을 오르면 사위가 트여서 전망이 좋을듯하고 또 다른 헬기장을 넘으니 폭우가 쏟아지며 태풍의 한자락인듯 거친 바람이 불어온다.
가파른 숲길을 올라가면 일반산악회의 표지기도 보이고 오른쪽으로 꼬부라지는 정맥길을 지나 인대산(666m)에 오르니 돌덩이 몇개 놓여있고 소나무 한그루만이 비를 맞고 쓸쓸히 서있다.

- 백령고개
헬기장이 있는 590봉을 지나고 특이하게 넓은 평상이 놓여있는 숲길을 통과하면서 중간중간 신발을 벗어 고인 물을 쏟고 양말을 짠다.
가파른 능선길을 올라 삼각점이 있는 622.7봉에 올라도 역시 시야는 막혀서 답답하고 무덤들을 지나서 낙엽송지대를 통과한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정맥을 따라가다 다시 길이 희미한 낙엽송군락지를 지나면 어두운 숲은 빗줄기 소리만 요란하다.
소나무들이 멋있게 자리잡은 미끄러운 암릉들을 조심해서 지나고 벼랑지대를 통과해서 능선길을 이어간다.
무덤이 있는 작은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꺽어져 잡목과 잡초들로 길이 없어진 야산지대를 힘겹게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백령고개이며 전승탑이 높게 솟아 있다.
하늘이 뚫린 휴게소 의자에 앉아 진흙투성이의 후줄근한 옷을 걸치고 빗물젖은 빵조각을 씹고있으니 거지가 따로 없다.

- 육백고지
백령성터의 미끄러운 바위들을 넘고 잘 다져진 등산로를 따라 바위들 틈으로 노송들이 서있는 615봉에 오르면 정맥은 남동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서서히 노송들과 어우러진 암릉지대가 나타나고 미끄러운 바위들을 나무들을 잡고 조심해서 지나면 아찔한 벼랑밑으로 마을들이 내려다 보인다.
험준하게 솟은 암봉을 올라 바위에 서니 날만 맑았으면 대단한 조망을 보여줬을텐데 불어 닥치는 비바람에 사방은 막혀있고 빗물이 흘러 안경을 가린다.
굵은 밧줄을 잡고 절벽을 내려가 숲길을 걸어가니 이제는 신발깔창이 꺽이고 발바닥을 찔러대서 신경이 쓰인다.
육백고지 이정표가 서있는 일명 백암산(630m)을 오르고 가파른 암릉길을 내려가면 헬기장을 넘어서 백암과 남이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난다.

- 게목재
무너진 성처럼 돌무더기들이 쌓여있는 570봉을 내려가면서 태풍이 지나갔는지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소나무들사이로 암릉길을 지나서 멋드러진 조망대 바위에 서면 앞에 713.5봉이 우뚝하고 선야봉을 지나 셋티재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육중하게 보인다.
희미한 선야봉갈림길을 지나 삼각점이 있는 713.5봉을 오르니 조망은 답답하고 비는 그쳤지만 어둠침침한 숲속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다.
사람의 진을 빼는 급한 경사길을 올라 750봉을 넘고 게목재(639m)로 내려가니 이정표도 서있고 왼쪽으로 무릉리민박촌 하산로가 선명하다.
사타구니는 옷에 쓸려 아파오고 시간도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니 이쯤에서 내려갔으면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다음 구간을 끊기가 힘들고 게다가 간간이 햇빛도 비치기 시작하니 어차피 싸리재까지 가는게 좋을것이란 판단을 한다.
얼려온 캔맥주를 마시고 남아있는 간식으로 힘을 북돋은뒤 산죽을 헤치며 적막한 숲길을 가파르게 오른다.

- 봉수대
숨을 헐떡이며 770봉을 넘고 암릉지대를 지나면 숲은 자욱한 운무가 끼어서 시야가 좋지않다.
키큰 산죽들을 헤치고 봉우리들을 넘으며 이러다가 날이라도 저물면 산죽지대에서 길을 잃을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생각을 해본다.
연이어 나타나는 산죽지대를 허리를 굽혀가며 힘들게 통과하면 가파른 오르막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벼랑으로 이루어진 암봉을 지나고 삼각점도 확인하지 못한채 786.6봉을 넘어 내려가니 드디어 앞에 봉수대가 있는 봉우리가 눈에 들어오고 원래의 금남정맥이라고 논란이 많은 왕사봉 줄기가 옆에 보인다.
안부를 보며 희미한 길을 내려가다 낙엽송이 울창한 숲속에서 길이 없어지고 물줄기가 보이는데 시간이 없어 서둘다가 늪에 빠지고 길을 잃는다.
안개낀 숲속에서 이리저리 헤메다가 방향만 잡고 사면을치고 오르니 산죽지대가 나오며 반가운 정맥표지기를 만나는데 일몰시간까지 길을 못 찾았으면 큰 곤욕을 치룰뻔 했다.
작은싸리재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 잠시 숲길을 따르면 산정에 높게 쌓여있는 옛 봉수대(824m)가 나오고 안내판이 서있다.
넓직한 봉수대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막힘이 없어 지나온 정맥길이 훤하고 운장산에서 연석산으로 이어지는 정맥의 막바지 흐름이 뚜렸하게 보이며 구봉산등 수많은 능선봉들이 고개를 내밀며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말없이 일몰을 기다리는 우리의 산줄기들을 바라 보고있으니 가슴 벅찬 감동이 물밀듯 몰려온다.



(786.6봉을 내려오다 바라본 봉수대)



(봉수대에서 바라본, 지나온 정맥길)



(봉수대에서 바라본, 운장산으로 이어지는 정맥길)

- 작은싸리재
갈림길로 되돌아와 어두운 숲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진흙길을 조심해서 따라간다.
나라에 위급한 일이 있을때 봉화를 밝히려 조상들이 힘들게 올랐을 이길을 나는 그저 미끄러지지 않으려 또 길을 잃지 않으려 신경쓰며 터벅터벅 지나갈 뿐이다.
통신탑이 서있는 넓은 비포장임도에 내려서서 금산택시를 부르고 꾸불꾸불하게 이어지는 물텀벙 길을 휘적 휘적 내려간다.
풀섭에 숨었다가 혼자 놀래서 내빼며 뒤를 돌아다 보는 노루새끼를 바라보며 웃고, 껑충껑충 뛰어서 시야에서 멀어지는 고라니를 보면은 역시 동물들과 더불어 사는 이땅이 내땅이 맞기는 한 모양이다.
서서이 어두어지는 비탈길을 잰 걸음으로 내려가면 봉우리위에 사각으로 서있는 봉수대가 몇백년부터 그랬듯이 손님의 뒤통수를 지긋하게 바라보고 있다.
중리마을의 불빛들이 반짝거리며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