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지리산 (ⅰ)

지리 황금능선 (치밭목-써리봉-국수봉-구곡산-도솔암)

킬문 2006. 7. 16. 10:37
2002년 8월 4일 (일요일) 

◆ 산행일정
출발(05:55)
하봉
하봉헬기장(06:25)
치밭목산장(07:05)
출발(09:16)
써리봉(09:45)
1037.5봉(11:26)
무명봉(12:00)
국수재(12:34)
국수봉(12:45)
능선갈림길(13:44)
천잠삼거리(13:57)
구곡산(15:47)
도솔암(17:34) 

◆ 산행시간
약 11시간 39분 

◆ 동행인
강환구, 이사벨라, 노으리 

◆ 후기
밤새도록 나뭇뿌리에 등이 결려서 이리저리 뒹굴다가 새벽에 눈을 뜬다.
전날의 모진 산행에 지친 이사벨라님은 아직 꿈결이고 밖에서 자던 단풍님은 어디론가 없어져 버렸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메트만 깔고 팬티한장으로 잠을 자니 보통 체력이 아니다.
"제가 인삼을 워낙 많이 먹어서 몸에서 열이 펄펄 납니다."
어슴프레한 지리의 숲속은 정적에 묻혀있고 막 잠에서 깨어나는 새들의 날갯짓이 들리는듯 하다.
등로를 확인하러 간 단풍님이 내려오고 짐을 챙겨 치밭목으로 향한다.(05:55)

조금 오르자 암릉들이 나타나고 우회하는 길을 피해 능선으로 몇분 오르니 하봉(1780m)이다.
암봉에 오르면 사방이 막힘이 없어 겹겹이 뻗어 나가는 지리의 능선들이 힘찬 모습을 보이며, 발아래로는 초암능선이 갈라져 나가고, 조금 밑에는쓰러진 나무가 사다리처럼 걸려있는 멋있는 촛대봉이 보이는데 그 능선들의 끝에는 운해에 잠겨있는 마을들과 도로가 아련하게 누워있다.
하봉에서도 한참을 올라 하봉 헬기장을 만나고 바로 좌측의 소로로 들어선다.(06:25)
돌무더기들이 깔려있는 좁은 길을 내려가면 샘터가 나오고 시원한 물 한모금을 마시니 몸속이 개운해진다.
물이 졸졸 흐르는 암반지대를 지나고 물이 제법 많이 내려오는 개울을 건너 조개골 내려가는 삼거리와 만나서 평탄한 오솔길을 조금 오르면 곧 치밭목 산장이다.(07:05)
밤새 기다림에 지쳐 버린 노으리님도 만나고 김치찌개에 소주를 곁들여 아침을 먹는다.
이사벨라님과 나는 예정대로 황금능선이고 노으리님과 단풍님은 어름골로 내려간다고 하다가 다시 국골로 방향을 바꾼다.
써리봉을 향해 오르는데 갑자기 노으리님이 황금능선으로 같이 간다고 하신다.
"흐흐흐 그러면 그렇지 지리산 매니아라는 사람이 안 가본 능선을 간다는데 국골로 내려갈리가 없지..."
어느정도는 예상했던 일이다.

써리봉(1640m)에서 초입을 찾으니 이정표 뒤로 비교적 뚜렸한 길이 보인다.
예상외로 푹신푹신하고 나무들이 울창한 조용한 길을 내려가면 능선은 동쪽에서 남쪽으로 슬그머니 방향을 튼다.
얼마간 내려와 암릉위에 서니 천왕봉과 중봉이 바로 위에 올려다 보이고 길고 긴 주릉이 끝이 없이 이어진다..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남부능선 사이에는 온통 수림의 바다가 펼쳐 있고 그속에는 골골이 수많은 계곡들이 물줄기를 토해내고 있을 것이다.
동부능처럼 험한 길이 아닌 완만한 능선을 내려간다.
별다른 특징은 없지만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한적한 길을 한동안 내려가면 작은 암봉이 나온다.(11:26)
여기서는 중산리의 시설지구들이 내려다 보이고 청소년학습수련장의 붉은 지붕이 가깝게 보이며 앞으로는 국수봉인 듯 높은 봉우리가 솟아 있다.

잡목이 우거진 길을 내려와 가파른 오르막을 한동안 오르면 1037.5봉인데 표지기들이 몇개 붙어 있지만 수림이 우거져 조망은 좋지 않다.(12:00)
여기에 표지기 하나를 붙이고 기다리니 뒤늦게 오신 노으리님이 표지기를 붙이는 이유가 뭐냐며 은근한 시비를 걸어온다.
마치 ok사다리의 놀부영감처럼...
길 안내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다 글쎄 산에 다니는 산사람들의 교감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날도 덥고 논쟁을 그만 둔다.
다시 완만한 길을 신나게 내려가니 국수재가 나오는데 좌측은 내원마을과 연결되고 우측은 청소년자연학습장으로 내려가는 안부이다.(12:34)
안부에서 잠시 오르면 다시 봉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능선은 동쪽으로 급하게 꺽이니 아마 이곳이 국수봉(1030m)으로 추측된다.(12:45)

여기서 동쪽으로 길을 찾으니 직진하는 남쪽으로만 등로가 있다.
불안한 마음으로 잘 나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니 아니나 다를까 길은 동쪽 사면으로 급하게 꺽이면서 봉우리를 우회한다.
잘못 직진하면 엉뚱한 덕치로 떨어지는 길이니 방향을 잘 확인해야 할 것이다.
능선으로 다시 붙으면서 이제 산죽밭이 이어진다.
키를 넘는 산죽을 헤엄을 치듯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헤치고 어느곳은 땅바닥을 기듯 몸을 낮추어 통과해야 한다.
중간중간 잠시 편한 초지가 나와 안심을 해봐도 산죽밭은 곧 계속 이어진다.
가을에는 이 산죽이 누런 빛을 띄어 멀리에서 보면 온통 황금색의 물결이라 황금능선이라고 한다는데 가을이건 겨울이건 이 산죽을 헤치는 것은 항상 힘들 것이다.
어제 고생하신 이사벨라님이 오늘은 완전히 기력을 되찾아 가벼운 걸음으로 나아간다.
구슬땀을 뻘뻘 흘리며 힘든 몸짓으로 산죽밭을 통과해서 낮으막한 봉우리에 이르고 능선은 여기서 남쪽으로 급하게 꺽여 나간다.(13:44)
다시 지겹게 계속되는 산죽길을 얼마간 내려가면 앞이 훤히 트이며 안부가 나타나는데 천잠능이란 이정표가 서있으며 좌측은 역시 내원과 통하고 우측은 천잠으로 내려가는 길이다.(13:57)
여기에서 누룽지를 끓여 먹고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소주 한모금으로 힘을 북돋는다.
이제 구곡산까지 4km 정도만 오르면 되니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도는 듯 하다.

40여분 시간을 보내고 구곡산으로 향한다.
최근 산악마라톤 대회를 해서인지 산죽들이 베어져 있고 등로가 정비되어서 넓직하지만 走路를 표시하느라 쳐놓은 흰 비닐줄들이 그냥 남아 있어 아주 지저분하게 보인다.
완만한 길을 올라 봉우리에 오르니 이제 천왕봉은 가물가물하고 구곡산은 바로 앞에 솟아 보인다.
간간이 나타나는 암릉들을 통과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봉우리들은 계속되고 길은 이어진다.
이렇게 몇 봉우리를 넘으니 도솔암에서 오르는 또 다른 등로와 만나고 왁자지껄하는 등산객들의 소리가 들린다.
조금 오르니 정상 아닌곳에 삼각점이 있고 계속 더 올라야 구곡산(961m) 정상이 나온다.(15:47)
멀리 남해도 보인다던데 대기는 흐릿하고 내리 쬐는 뙤약볕 아래에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밑으로 내려온다.
그늘에 앉아 있으니 골바람이 슬슬 불어와 땀을 식혀주고 한동안 있으니 일행들이 도착한다.

잠시 쉬고 계속 이어지는 남쪽 능선을 따라 하산을 한다.
얼마간 내려가면 거대한 철판이 세워져 있는데 그냥 "자연보호" 네글자만 쓰여 있다.
다들 한마디씩 한다. "저런것을 뭐하러 세워났나? "
산행을 끝냈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한적한 능선길을 내려 간다.
고도를 낮추는 능선을 한동안 내려가다 절골과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좌측의 도솔암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급경사 사면을 한동안 내려가면 물소리가 졸졸 들리기 시작하지만 수량은 거의 없다.
뒤에 오는 단풍과 노으리님이 혹시 절골로 잘못 가지 않나 소리를 지르니 갈림길쪽에서 대답이 온다.
대잎이 잔뜩 깔린 고즈넉한 대나무 숲속길을 지나면 물줄기가 커지고 물이 알맞게 고인 곳에서 이사벨라님이 딱는다고 하신다.
어디 적당한 곳이 없나 두리번 거리며 한참을 내려가면 두가닥 물줄기가 합류를 하는곳에 알탕하기 좋은곳이 나온다.
체면 불구하고 이틀간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딱고 물속에 몸을 담구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마른 옷으로 갈아 입고 도솔암으로 내려가니 찌뿌득한 날씨가 기어이 소나기를 뿌려댄다.(17:34)
덕산 택시에 전화를 하니 휴가철이라 차는 없다고 하고 단풍과 노으리님은 내려올 줄을 모른다.
마침 놀러왔던 찝차를 얻어타고 두사람만 덕산으로 향한다.
덕산이건 진주이건 어디선가 만나겠지 생각을 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