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 (Ⅰ)

한라산 등반 (성판악-백록담-관음사)

킬문 2006. 7. 20. 12:31
2001년 1월 11일 (목요일) 

◆ 일정표
성판악(09:45)
화장실쉼터(10:37)
사라악대피소(10:54)
진달래대피소(11:22)
한라산(12:22)
1700미터(13:15)
용진각대피소
삼각봉(13:51)
개미목(14:08)
탐라계곡대피소(14:39)
숯가마터(14:56)
구린굴(15:10)
관음사매표소(15:29) 

◆ 산행시간
약 5시간 44분 

◆ 후기
이른 새벽에 아파트를 나와 차가운 대기속으로 걸어나가면 항상 을씨년스럽고 귀찮은 마음이 들지만 새로운 산행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도 또한 만만치 않다.
의정부 버스터미널 옆의 정류장에서 공항버스를 기다리니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도로 가장자리에 얼어 붙은 눈덩어리들은 가로등 불빛에 반짝거린다.
5시 50분에 공항 리무진버스에 오르니 버스는 신호등을 무시해가며 눈 덮힌 도로를 바삐 달려 6시 55분에 국내선 청사앞에 내려 놓는다.
공항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스넥코너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려 7시40분 제주행 첫 비행기에 오른다.

한라산은 정상부의 훼손이 너무 심해 올 3월부터 5년간 정상등정이 금지될 것이라고 알려져 올해는 예년보다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온다고 한다.
전번 주말에 산행을 한 사람들은 폭설로 인한 비행기 결항으로 2-3일씩 집에 오지 못하고 고생했다고 하는데 오늘 날씨는 약간 흐린 정도라고 한다.
백두대간 종주를 같이 하던 분들은 1박2일 예정으로 어제 제주에 갔었고 지금쯤 성판악에서 오르고 있을것이다.
나는 시간이 없어 같이 가지 못한다고 했다가 당일로도 가능할 것 같아 부랴 부랴 비행기표를 구해 간다.

약 10분정도 연착하고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바로 성판악으로 향한다.
출발하면서 부터 창가에 약간씩 묻어나던 빗방울들은 차가 5.16횡단도로에 들어서자마자 가느다란 눈줄기로 바뀌고 올라 갈수록 도로에 눈이 많이 쌓여 차들은 게걸음을 한다,
성판악에 도착하니 9시 45분인데 몇대의 관광버스가 서 있고 사람들이 돌아 다녀도 예전같은 흥청대는 분위기는 아니다.
매표소에 도착하니 안내판에 아침 9시이후는 성판악에서 출입이 통제되고 진달래대피소에서는 12시부터 백록담등정을 할 수 없다고 적혀있다.
2년전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을텐데 전혀 생각도 못했고 비행기까지 타고 왔는데 막상 못 들어간다고 하니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올라갈 수 없다고 하던 매표소 직원은 진달래까지만 간다는 내말에 선심쓰듯 표한장을 내 던지고 창문을 닫는다.
바리케이트를 열며 등산로에 들어서니 하늘은 더욱 어두어지고 싸락눈은 슬금슬금 얼굴을 때리기 시작한다.

이정표에는 백록담까지 9.6km라고 적혀있다.
돌멩이들이 잔뜩 깔려있는 길은 눈이 약간 덮히고 사람들이 많이 다녀 반질반질하고 미끄러으며 참나무들과 잎 넓은 활엽수들 밑으로 조릿대들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해서 오르다 보면 하이힐이나 구두를 신은 관광객들과 등산복차림의 중년 부부 들이 줄을 지어 내려온다.
아마 사라악대피소나 진달래대피소까지 갔다 오는 중일 것이다.
조릿대 사이의 길을 따라 오르면 회색 잿빛하늘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작은 오름하나가 왼쪽으로 보이고 굵어지고 단단해진 싸락눈은 소낙비처럼 몸에 내려 꽂힌다.
이길은 세번째 오르지만 멋이 없고 특징도 별로 없어 항상 지루하기만 하다.
한참을 올라가면 간이화장실이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7-8명의 등산객들이 앉아 간식을 먹으며 담소하고 또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다.

좀 가파라진 등산로를 가다 보면 눈은 더욱 많이 쌓여있고 해발을 표시하는 돌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으며 키 작은 주목들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끄럽고 꼬불꼬불한 길을 계속 올라 눈이 쌓여 더욱 한적해 보이는 사라악약수를 지나고 사라악대피소에 닿는다.
대피소에는 사람이 없어 쓸쓸하고 응달이 들어 아주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얼음이 얼어 더욱 미끄러워진 등산로를 계속 오르면 하늘이 점차 보이기 시작하나 날은 잔뜩 흐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호목책이 설치된 검은 바윗돌지대를 넘어가면 진달래대피소가 나타나고 주위는 온통 키 작은 관목들이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대피소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컵라면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어 시장바닥처럼 시끌시끌하다.
통제시간인 12시 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마음이 놓이고 여유가 생긴다.
대피소 계단에 서서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하며 땀을 딱는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2.3km로 별로 멀지 않지만 오르는 사람들이 많고 병목현상이 나타나 중간중간 서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옆길로 추월하며 올라가다 보면 눈은 약해지지만 점차 바람이 세어지고 추어진다.
좀 올라가니 어제 왔던 일행들과 만나고 반가운 해후를 한다.
계속해서 오르면 보호목책과 나무계단들이 나타나고 계단들과 사이사이의 바위들을 힘겹게 오랫동안 올라가 백록담정상에 닿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여기저기에 앉아 쉬고 있고 정상표시석 옆에서는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려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분화구 안쪽을 내려다 보니 바로 앞도 보이지 않고 얼음조각과 눈덩이들만 얼굴을 세차게 때린다.
2년전 가을에는 조망이 좋아서 바다가 가까이 보이고 넓은 초원과 가지각색의 식물들로 왕성한 식생을 보였지만 이제는 키작은 관목들과 마른 풀들만 눈을 쓰고 앙상하게 누워있다.
기다리며 사진 한장을 찍고 주위를 바라보고 있으니 바람은 더욱 거칠어지고 눈보라가 치며 찬 기운에 귀와 코가 떨어져 나가는듯 하다.

오래 쉬지 못하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관음사 쪽으로 내려가면 이정표에는 관음사까지 8.7km라고 적혀있다.
나무계단을 통해 내려가니 성판악쪽보다 더 많은 눈이 쌓여있고 길옆의 빽빽한 구상나무가지마다 눈꽃을 뒤집어 쓰고 눈터널을 이루고 있어 그야말로 장관이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두껍게 얼어붙어 미끄러워진 길을 내려가면 왼쪽으로는 크고 멋있는 암봉들이 눈을 얹고 우뚝 서있다.
경사가 가파라지는 눈길을 내려와 1700m 표시석을 통과하니 곳곳에 소나무 군락지들이 나타나고 계속 내려가 용진각 대피소에 닿는다.
건물은 매우 낡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고 안에는 몇명의 등산객들이 앉아서 음식물을 먹으며 쉬고 있다. 그 옆에 앉아 빵과 우유로 점심을 먹지만 바로 옆에 쓰레기들이 마구 버려져 있어 지저분 하고 입맛이 달아나 곧 배낭을 닫아 버린다.

대피소에서 나와 꼬불꼬불한 오르막 길을 올라가면 삼각봉이라는 안내판이 나타나지만 날이 흐려 봉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를 가리키는 안전줄을 따라 걷다보니 위험 표지판들이 곳곳에 서있어 등산로 이탈을 경고한다.
노송들이 멋있게 서있는 곳을 지나 내려가면 개미목에 이르고 조릿대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길가에 앉아있던 커다란 까마귀 한마리가 길다란 감껍질을 물고 나무위로 올라가 음산한 울음소리를 내며 쳐다 보다가 가까이 가자 날아가 버린다.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싸락눈을 맞으며 계속 내려가면 탐라계곡 대피소가 나타나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적적하기만 하다.

대피소를 지나치면 얼어붙은 급경사 내리막 길이 나타나고 조심해서 내려와 얼음이 깔려있는 계곡을 몇차례 건넌다.
여기서 부터는 계속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내려가는 길이며 눈은 약간씩 녹기 시작해 질퍽거리기 시작한다.
계곡은 검고 둥굴둥굴한 크고 작은 현무암들이 잔뜩 쌓여 있지만 물은 바닥에만 약간 고여있고 음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계곡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옛날의 숯가마터가 보이고 잠시후 제주 특유의 용암동굴인 구린굴들이 나타난다.
작은 돌들이 잔뜩 깔려 있는 좁은 길을 내려가니 눈은 점차 그치고 바람도 약해지며 어디에선가 은은한 향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참나무들이 빽빽하고 조릿대들이 무성한 평탄한 길을 오랫동안 걸으면 매표소가 나타나고 철문울 나오니 야영장이 있으며 주차장이 앞에 보인다.
야영장의 넓은 나무평상에 배낭을 내려놓고 땀을 훔치며 짐을 정리하다 보면 주위의 나뭇가지에는 수십마리의 까마귀들이 앉아 괴기스럽게 울어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