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 (Ⅰ)

산정호수를 휘돌아 (각흘봉-명성산-여우봉)

킬문 2006. 7. 21. 15:31
2001년 11월 8일 (목요일) 

◆ 산행일정

의정부터미널
도평리
자등현(11:20)
첫이정표(11:40)
둘째이정표(11:56)
헬기장
석이바위
808봉
북능갈림길(12:56)
각흘봉(12:58)
계곡갈림길(13:11)
능선갈림길(13:19)
무명봉(13:34)
약사령(13:54)
용화저수지갈림길(14:20)
명성산(14:46)
심각봉(15:25)
억새공터(15:40)
계곡(16:10)
여우봉(16:44)
비선폭포(17:28)
산정호수주차장(17:33) 

◆ 산행시간
약 6시간 13분 

◆ 후기
오늘은 모처럼 아내와 도봉산을 가기로 한 날인데 몸 상태가 좋지 않은지 이것 저것 핑계를 대며 안 가겠다고 버틴다.
도봉산 대신 혼자 경기북부의 산중에서 가보지 못했던 각흘봉을 올라 명성산까지 이어 보기로 하고 천천히 배낭을 꾸린다.
무박도 아니고 아니면 새벽 일찍 출발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해가 중천에 뜬 후에 느긋히 준비하는 산행은 실로 오랬만이다.
집앞의 의정부터미널에서 9시가 넘어 이동행 버스를 타니 축석고개부터는 차가 밀려 꼼짝을 안한다.
가뜩이나 늦게 출발했는데 차까지 막히니 산행이나 제대로 할지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다행히 송우리를 지나서 부터는 길이 뚫린다.
종점인 도평리에서 와수리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가까운 곳에서 포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명성산은 산불예방기간과 별도로 사격연습이 있을 때는 입산이 통제될 때가 많아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버스는 약사삼거리를 거쳐 각흘봉의 계곡쪽 등산로가 있는 한국성서학교수양관을 지나고 꼬불꼬불한 도로를 올라간다.
기사분께 부탁해 고개정상에서 내리니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이고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자등현이다.

따뜻하게 내리 쬐는 햇살을 받으며 교통호를 따라서 들어가면 주위는 온통 참호와 벙커등 군사시설 뿐이다.
진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가니 나무들은 이제 모두 옷을 벗어 버리고 낙엽은 두텁게 쌓여 있다.
계속 올라가면 작은 베니아판에 그린 등산 안내판이 나무에 걸려있고 점차 경사가 가파라지기 시작한다.
능선 너머로는 암봉으로 이루어진 각흘봉 정상이 보이고 북쪽으로 뻗어 나가는 긴 능선과 절벽들이 눈에 들어 온다.
두번째 안내판을 지나 가파른 능선을 올라가다 보니 할아버지 네분이 가시는데 꼬부라진 스틱으로 나뭇가지를 잡아가며 힘들게 오르신다.
길을 비켜주시며 가뿐 숨을 몰아 쉬는 지친 두눈에서 엉겹결에 지나가 버린 젋은 세월의 무상함을 보는 듯해 안타깝다.

호젓한 등로를 올라가면 큰 바위들에 둘러 쌓여 있는 아름드리 노송이 서있는데 계곡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다.
노송을 지나니 정성 바로 전에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는 올라 오면서 보았던 북쪽 능선이 갈라져 나간다.
벙커를 지나 북릉으로 들어서면 군인들이 버린 듯 전투식량 껍데기들과 페트병등 여러 쓰레기들이 널려 있어 지저분하고 자등리쪽의 꿀벌농장 쉼터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바로 갈라진다.
잡목사이로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희미한 길을 따라가 작은 암릉들을 지나고 기묘한 모습으로 험준하게 솟아있는 석이바위를 우회한다.
가느다란 보조자일을 잡고 급경사 절벽을 조심해서 내려가고 소나무가 울창한 봉우리를 넘으니 갑자기 앞이 툭 트이고 광활한 억새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키큰 억새밭 사이로 걸어가면 듬성듬성하게 서있던 나무들은 모두 베어져서 사방으로 막힘이 없고 시원하다.
왼쪽으로는 용화저수지의 푸른 물빛이 반짝거리고 철원시가지가 잘 보이며 오른쪽으로는 복주산을 거쳐 광덕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의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속리산의 비로봉능선을 축소해 놓은 듯 넓은 초지 사이에 큰 돌들이 이곳 저곳 박혀 있는 능선을 따라 809봉에 오르고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밭을 지나 808봉에 이른다.
이곳에서 동으로 꺽어지는 능선을 따라 750봉과 697봉을 지나면 자등리쪽으로 내려갈 수 있지만 이쯤에서 발길을 돌린다.
미친듯이 부는 바람을 맞으며 너른 억새밭을 걸어 나오면 고독감이 들기도 하지만 홀로만이 느낄 수 있는 자유스러움은 더 큰 기쁨으로 밀려 온다.

석이바위를 다시 올라 삼거리에 돌아오니 할아버지들이 앉아서 점심을 먹고 계신다.
삼거리 공터에서 조금 더 오르면 암봉으로 이루어진 각흘봉(838.2m)이고 표시석은 없으며 작은 돌탑만 서있다.
정상에서는 조망이 아주 좋아 정면으로 박달봉 청계산 국사봉 운악산 화악산등이 보이고 옆으로는 명성산과 사향산이 지척에 있다.
북릉을 갔다 오느라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보내 물만 마시고 바로 약사령으로 향한다.
암릉을 타고 내려가 한적한 능선길을 따라가니 억새밭 사이에 저고리샘을 거쳐 약사계곡으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보인다.
갈림길을 지나 무너진 수직절벽 옆으로 자연히 형성된 절개지를 건너는데 겨울에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숲길로 들어가면 동쪽 능선으로 갈라져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왼쪽으로 갈라지고 표지기들이 많이 달려있다.
직진해서 약사령쪽으로 들어가니 급경사 내리막 길이 나오고, 군인들이 설치한 굵은로프를 잡고 작은 암봉들을 몇개 올라 헬기장이 있는 넓은 봉우리에 닿는다.
발밑으로 보이는 약사령을 바라보며 양지 바른 곳에서 빵과 우유로 늦은 점심을 먹으면 사방이 고요하고 적막하기가 이를데 없다.
참호와 벙커사이의 길을 조금 내려가 약사삼거리와 지포리를 잇는 비포장 군사도로인 약사령에 내려선다.

고개에는 사격장주의 경고판이 서있지만 잠시 서서 귀를 기울여도 포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맞은 편으로 건너가 나무계단을 타고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군인들이 설치한 로프가 곳곳에 매어져 있다. 진지를 넘어 숲으로 들어가니 가파른 돌길이 이어지고 암봉들이 나타난다.
노송들과 고사목들이 멋있게 서있는 암봉들을 우회해서 오르면 미끄러운 곳에는 곳곳에 로프가 매어져 있다.
몇개의 암봉을 지나면 이제는 광활한 초원지대와 억새밭이 펼쳐지며 왼쪽으로 사격장의 둥그런 번호판들이 보인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아무도 없는 확 트인 초원을 걸어가니 땀은 마르고 마음은 편안해지며 역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용화저수지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는데 갑자기 벼락같은 대포소리가 나고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멀리 있는 번호판으로 폭탄이 떨어진다.
혼비백산하여 앞으로 보이는 큰 바위를 향하여 뛰어 올라간다.
숨을 헐떡이며 바위뒤에 숨어서 능선밑으로 올라가니 그제서야 사격장과 어느정도 떨어지고 비로서 안심이 된다.
설마 등산로 가까운 곳까지는 폭탄이 날라오지야 않겠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고 모든것이 미리 알아보지 못한 자기 잘못이다.
놀란 가슴을 추스리며 주능선에 오르니 그때부터는 요란한 사격소리가 들리고 가까운 곳의 번호판에 연달아 폭탄들이 떨어지며 연기가 자욱하다.
암릉을 따라 명성산(922.6m)에 올라가니 단체로 온 20여명의 등산객들이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 한다.

정상에 서면 각흘봉 북릉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능선과 넓은 초원지대가 한눈에 들어오며 명성산의 여러 암봉들과 절벽들이 철 지난 단풍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다.
산안고개로 내려가는 길을 지나고 좀전에 올라왔던 약사령쪽 삼거리를 넘어 남쪽 능선으로 향한다.
철이 지나 약간씩 수그러드는 억새들 사이로 완만한 암릉들이 이어지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몇번을 와봤지만 역시 사방으로 조망이 좋아 시원한 능선산행을 할 수 있는 멋있는 산이다.
수직절벽이 있는 험한 암봉을 로프를 잡고 내려가 아기자기한 암릉길을 따라가니 산안고개로 내려가는 또 다른 삼거리가 나온다.
삼각봉을 지나 산정호수를 바라보며 내려가면 넓은 억새밭이 있는 공터가 나오는데 산행객들이 올라와 점심을 먹는 곳이며 자인사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있다.
무성한 억새밭 사이로 동쪽 길을 내려가니 등룡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표지기들이 많이 붙어있다.
갈림길을 지나고 작은 봉우리에서 희미한 돌길을 따라 내려가면 낙엽이 많이 깔려있고 호젓하다.
계속 내려가니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곧 등룡폭포 윗쪽의 계곡에 닿는다.

계곡 너머로 헝겊들이 많이 매어져 있고 연인봉(여우봉)이라 쓰인 작은 종이판이 걸려있다.
시간은 좀 늦었지만 별로 멀지 않은 것 같아 올라가면 최근에 등산로를 만든 듯 사면을 따라 붉은 헝겊들이 붙어있다.
진땀을 흘리며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고 이정표 따라 잡목이 빽빽한 등로를 올라가면 여우봉(620m)이며 각흘산악회에서 세운 나무표시판이 세워져있다.
정상에서 남쪽의 희미한 길은 여우고개로 내려가는 길이라 서쪽의 산정호수 방향으로 꺽어진다.
빽빽한 수림사이로 내려가 설악산의 흔들바위와 흡사한 둥그런 바위와 거북을 닯은 바위를 지난다.
연이어 나타나는 암릉들을 내려가니 사향산이 왼쪽으로 가깝게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명성산 암봉의 대슬랩이 웅장하게 보인다.
사향산은 작년 겨울 늦은 시간에 올라갔다가 하산로가 없어 고생했던 곳이고 정상의 군부대도 뚜렸하게 보여 그때의 기억으로 쓴웃음을 지어본다.
점차 길은 희미해지고 다소 험한 편이라 야간에는 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447.3봉을 우회하고 뒤돌아 보면 수직절벽으로 이루어진 암봉이 인상적으로 보인다.
묘지들을 지나니 이정표가 서있고 길은 북쪽으로 급하게 꺽어지며 초겨울의 해는 짧아져 어두운 기운이 서서히 몰려 오기 시작한다.
어둑어둑한 길을 내려가면 유원지의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곧 비선폭포에 다다른다.
뿌옇게 흐려진 물줄기를 보며 유원지주차장으로 내려가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마시며 운천행 버스를 기다리니 곧 어둠이 명성산을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