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 (Ⅰ)

석화성을 향하여 (청암사-수도산-가야산-해인사)

킬문 2006. 7. 21. 15:15

2001년 10월 31일 (수요일) 

◆ 산행일정
서울역
김천역(01:56)
청암사(03:53)
주능선(05:01)
수도암갈림길(05:16)
수도암갈림길
수도산(06:01)
심방갈림길(07:04)
단지봉(07:38)
좌일곡령(08:23)
1124.9봉(09:07)
목통령(09:23)
분계령(10:42)
두리봉(11:02)
부박령(11:17)
가야산(12:26)
해인사
버스정류장(13:50) 

◆ 산행시간
약 9시간 57분 

◆ 후기
김천역에 내리니 새벽 1시56분인데 역사를 빠져 나오자마자 찬바람에 몸이 저절로 움추러든다.
뭔가 먹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다방도 가기 싫어 대합실로 들어와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며 눈을 감아 보아도 잠은 오지 않고 텔레비젼의 드라마대사만 시끄럽게 울려댄다.
한시간여 앉아 있다가 더운 커피 한잔을 빼 마시고 택시에 올라 평촌리의 청암사를 향한다.
달리는 길 곳곳에는 짙은 안개가 끼여있고 시야가 흐려 길이라도 제대로 찾아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만 생긴다.
청암사 일주문에 도착해서 헤드랜턴만 켜고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다리를 건너 컴컴한 길로 들어서면 불을 밝힌 사찰에서 독경소리가 들려오고 그자리에 서서 오늘의 산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십사 가만히 속으로 합장을 하고 빌어본다.
조금 올라가니 길위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고양이만한 작은 동물의 시퍼란 두눈동자가 보인다.
다가가면 조금 도망가다 다시 쳐다보고 한동안 대치를 하더니만 슬그머니 없어져 버리는데 막연한 공포감이 절로 인다.
요란한 물소리를 들으며 올라가면 랜턴 불빛사이로 붉고 노란 이파리들이 언뜻언뜻 보여 단풍이 아직 지지 않았음을 짐작케 해준다.
넓은 길은 계류를 두어번 건너면서 점차 좁아지고 산죽사이로 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진다.
개울을 따라 가는 좁은 길은 이따금씩 사라져 버려 랜턴으로 표지기를 확인하며 가지만 등산로에도 물이 흐르고 있어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물소리가 멀어지면서 길은 점점 가파라지고 급경사를 한동안 올라 능선에 닿는다.
가만히 서서 땀을 딱으면 사방은 시커먼 정적속에 묻혀있고 발밑으로는 수도암의 불빛이 반짝거리며 머리위로는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수놓듯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왜 나는 이 먼 땅의 깊은 산속에서 홀로이 별들을 바라보며 서있는가...?

차가운 가을 바람이 불며 식은 몸이 부르르 떨려온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능선길을 따라 수도암에서 올라오는 갈림길들을 지나치고 거대한 노송들이 멋있게 서있는 안부를 통과한다.
가파른 오르막 길을 오르고 계속해서 나타나는 암릉들을 지나니 이윽고 수도산이 전면에 보이기 시작한다.

어둠속에서 가파른 길을 한동안 오르고 큰 헬기장을 지나 계속 올라가 주능선 삼거리에 닿고 오른쪽으로 조금 더 꺽어 수도산(1316.8m)에 오른다.
작은 표시석과 돌탑이 서있는 정상에 서면 북으로는 덕유산에서 대덕산을 거쳐 황학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물결이 도도히 흐르고 동남쪽으로는 단지봉이 우뚝 서있으며 이어지는 능선봉들의 머리위로는 가야산 정상의 암봉들이 불끈 솟아 올라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가야산 정상인 상왕봉을 바위로 된 불길 즉 석화성(石火星)이라 칭했고 많은 사람들은 만개한 연꽃모양이라고 표현했다던데 오늘은 마치 왕관같은 모양으로 주위를 압도하며 서있다.
동쪽으로부터 점차 여명이 밝아오며 가야산 일대에는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하고 정상은 반짝거리며 뚜렸한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동안 가야산을 몇번 올랐어도 원거리에서 보는 이러한 장관은 뜻밖이며 또한 감동적이기도 하다.
이제 별들은 그 빛을 잃고 점점 희미해지지만 양각산과 흰대미산으로 이어지는 서쪽 능선은 아직도 어둠속에 묻혀 있다.

정상에서 다시 삼거리로 내려와 반대편 암봉을 올랐다가 단지봉을 보며 내려가기 시작한다.
새벽녁의 능선길은 낙엽으로 뒤덮혀 있어 소란스럽고 또 을씨년 스럽다.
한동안 내려가니 아침이 밝아아 랜턴을 배낭에 넣으면서 비로서 물 한모금을 마시고 쉰다.
수도리와 심방으로 내려가는 사거리 안부를 지나며 길은 약간 희미해지고 나뭇가지들이 걸기적 거리기 시작한다.
배낭을 잡아 당기며 이리저리 얼굴을 찔러대는 나뭇가지들을 헤치고 길을 가면 억새군락들이 나타난다.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억새들은 홀로 헤메는 이방인을 환영하는 듯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거리며 몸통을 흔들어댄다.

간혹 나타나는 산죽군락을 통과하고 평탄한 잡목지대들을 지나니 키 큰 억새밭 사이에 수도리로 내려가는 두번째 안부가 나온다.
안부를 지나면 가파른 오르막 길이 시작되고 거친 잡목과 넝쿨들이 앞을 막고 괴롭힌다.
계속해서 급경사 길을 오르니 키 작은 관목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고 작은 돌탑들이 서있는 헬기장을 지나면 단지봉(1326.7m)정상이다.
관목이 빽빽한 넓은 정상지대에는 수많은 억새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고 전망은 거침이 없어 그야말로 일망무제이다.
멀리 남으로는 지리산 능선이 뚜렸하게 보이고, 천왕봉도 가늠할수 있을 듯 하며, 백운산을 거쳐 덕유산으로 올라와 추풍령으로 뻗어가는 대간의 마루금이 확연하다.
발밑으로는 거창쪽의 수많은 준봉들이 운해속에 그 머리만 드러내고 있고 동으로는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와 오늘 가야 할 산행의 방향을 잘 잡아준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울창한 관목숲 아래에서 김밥으로 아침을 먹는다.
밥알은 말라서 꼬득거리고 입맛이 없어도 갈길이 멀어 억지로 먹어둔다.
이제 날은 점차 따듯해지고 대기는 적당하게 데워져서 기운만 있으면 운행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관목지대를 내려가 이따금 나타나는 산죽밭을 지나면 2001년 9월 23일에 종주한 "강산에"님의 표지기가 간간이 눈에 띤다.
잡목지대를 지나니 오르막이 시작되고 암봉위에 올라서면 좌일곡령(1257.6m)인데 바람만 세차게 불어댄다.
굴곡 없는 길을 한동안 내려가면 암릉지대가 시작된다.

큰 암봉을 우회하고 키 큰 산죽밭을 통과하니 다시 암봉이 나타나 이번에는 바위들을 타고 넘어 정면으로 통과한다.
연이어 나타나는 여러 암봉들을 우회하면 이번에는 더욱 우람한 암봉이 길을 막고 이를 우회하며 1124.9봉을 오른다.
암봉을 지나서 완만한 능선을 타고 내려가니 옆으로 마을들이 가깝게 보이고 무덤 1기를 지나 좌우로 희미한 하산로가 있는 목통령으로 내려선다.
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고 넓은 헬기장을 지나면 키를 넘는 억새밭이 나오며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 오르니 무명봉이 나온다.
탁 트인 능선으로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상개금 마을이 가깝게 보이며 키 작은 푸른 소나무들과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풀들이 어우러져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계속해서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넘어 높은 무명봉에 오르면 내리막 길이 시작되지만 길은 더욱 희미해지고 표지기도 거의 없어 신경을 바짝 세워야 한다.
능선만 쫓으며 소나무들 사이로 조심해서 내려가니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분계령인데 우측의 상개금으로 내려가는 하산로는 매우 뚜렸하게 나있다.

안부를 지나면 다시 가파른 오르막 길이 시작되고 작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가지치기를 해서 등로는 넓직하다.
힘겹게 오르다 땀을 딱고 뒤돌아 보면 용두암봉으로도 불린다는 1124.9봉이 기묘한 모습으로 솟아 있어 눈길을 끈다.
오래된 헬기장을 오르고 계속해서 흰기가 꽂혀있는 넓은 헬기장을 지나면 삼각점이 박혀있는 두리봉(1133.4m)이다.
정상에서는 신계리와 치인리의 마을들이 가깝게 보이고 가야산의 불쑥 솟은 암봉과 넓은 관목지대가 눈앞으로 바짝 다가와있어 금방이라도 갈 수 있을 듯 하다.
봉우리에서 내려가면 등로는 왼쪽으로 급하게 꺽어지고 고도를 점차 낮추며 내려가니 좌우로 희미한 하산로가 있는 부박령이다.

이제는 거의 다 온 셈이라 코앞으로 바짝 다가선 가야산을 바라보고 힘을 내어 올라간다.
그러나 잡목지대를 오랫동안 올라가도 길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금방 가리라 생각했던 정상은 여전히 원거리에 남아 있다.
진땀을 흘리며 잡목지대를 통과하니 바위들 사이로 무성한 산죽밭들이 나타난다.
산죽사이의 길을 오랫동안 오르고 관목지대를 통과해서 드디어 정상부의 거대한 암봉밑에 도달한다.
홀연히 불어 닥치는 찬바람을 맞으며 바위를 타고 넘어 암봉을 오르고 좁은 철계단을 오르면 가야산정상인 상왕봉(1430m)이다.
정상에 서면 칠불봉이 지척이고 백련암으로 이어지는 울퉁불퉁한 암릉들이 인상적으로 보이며 매화산과 오봉산등 가야산을 둘러싼 여러 산봉들이 역동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 북서쪽의 수도산에서 이곳까지 뻗어오는 긴 능선을 다시 한번 음미하고 바로 하산하기 시작한다.
암릉사이를 통과해서 내려가면 가파르고 미끄러운 돌길이 이어져 무릎을 조심하며 천천히 걷는다.
산죽사이의 넓직한 길을 한동안 내려가니 마애불을 거쳐 극락골로 내려가는 길과 토신골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직진해서 토신골로 내려가면 계류가 시작되고 주위의 나무들은 온통 단풍이 들어 원색의 물결이 출렁거린다.
붉은색 노란색 황토색 갈색등 갖가지 색으로 단장한 나뭇잎들이 흐르는 물과 함께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
단풍에 취해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가면 길은 극락골과 다시 만나고 바로 해인사가 나온다.
북적이는 인파들을 뚫고 식당사이로 내려가 큰 길과 합류하고 버스매표소에 도착한다.
근처 식당에서 산채정식과 동동주로 점심을 먹고 매표소 의자에 앉아 대구행 버스를 기다리고있으면 단풍놀이왔던 대구아주머니들의 억센 사투리가 정겹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