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 (Ⅰ)

어처구니 없는 무박 산행(벼락바위봉-백운산-촉새봉)

킬문 2006. 7. 21. 16:12

2001년 12월 13일 (목요일) 

◆ 산행일정
서울역
원주역(01:15)
치악재(04:45)
치악휴게소(05:40)
휴양림갈림길(07:04)
임도(07:17)
벼락바위봉(07:55)
수리봉(08:26)
854봉(08:53)
작은백운산(09:38)
백운산(10:33)
대용수동갈림길(11:00)
조두봉(11:33)
조두치(11:55)
능선갈림길(12:30)
천은사갈림길(12:45)
촉새봉(13:11)
능선갈림길(13:48)
692.4봉(14:39)
대양아치(15:03) 

◆ 산행시간
약 8시간 43분 

◆ 후기
원주역에 내리니 새벽 1시15분이고 적어도 4-5시는 되어야 산에 오르는데 앞으로도 3시간 이상을 보내야 하니 보통 걱정이 아니다.
혹시라도 역전 심야다방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봤는데 해장국 파는 식당말고는 불 켜진 곳이 없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멈출 기색이 전혀 없고 오히려 더 굵어지는듯 하며 역앞으로 나오니 축축하면서도 차가운 바람만 을씨년스럽게 불어온다.
밤부터는 눈으로 바뀔 것이니 찬 겨울비에 몸이 젖는 그런 불상사는 없으리라는 당연한 추측과 바램이 무색해지고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해진다.
난방중인 대합실에 들어가 노숙자들 사이에 한자리를 마련하고 앉으니 모양새도 그렇고 한기가 몰려와 몸이 움추러든다.
산에 미친 사람도 아니고 이 차가운 겨울비 내리는 새벽에 산에 올라간다고 역 대합실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처지가 영 궁색하다.

너무나 추워 벙거지를 뒤집어 쓰고 얼굴을 가슴에 묻고 있으면 조금 따듯해지고 졸음이 온다.
졸다 깨다 일어나니 4시인데 어느새 비는 그쳤지만 택시를 타니 대신 비안개가 자욱하다.
5번 국도를 타고 신림을 향해 가다 치악재에서 내리니 휴게소는 문이 닫혀 있고 사방은 찰흑같은 어둠속에 묻혀있다.
무작정 앞에 있는 큰 송신탑으로 오르면 중앙고속도로가 나오고 절개지가 앞을 막는다.
다시 국도따라 고속도로밑을 횡단하고 산쪽으로 좁은 길을 따라가니 치악휴게소에서 세운 작은 등산로 표시판이 꽂혀 있다.
시멘트도로를 올라가면 칠봉암 안내판이 보이는데 칠봉암 가는 길이면 산행 방향은 제대로 잡은 셈이다.

비안개가 뭉쿨뭉쿨 피어나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니 일주문이 나오고 법당과 요사채들이 나오는데 워낙 안개가 심해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수 가 없고 일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법당뒤에서 등로를 찾다가 자욱한 안개속에 잠시 서있는데 바로 옆에서 갑자기 은은하게 울려오는 풍경소리에 그만 정신이 혼미해진다.
암자밖으로 나가서 길을 찾으며 내려가는데 이제는 올라 왔던 길도 제대로 찾을 수 없다.
이런 기상상태에서 아무곳이나 올랐다가는 십중팔구 조난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에 산행을 포기하고 터벅터벅 내려가니 빗줄기도 다시 뿌려댄다.
고속도로변의 치악휴게소에 들어가 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한동안 기다리니 안개가 좀 걷히는것 같다.
이번에도 길을 못찾으면 거꾸로 남대봉으로 올라 치악산 산행을 하리라 생각하고 다시 칠봉암으로 오른다.
조금씩 걷히는 안개속을 올라가면 일주문 가기 바로 전에 표지기가 두어개 보이고 묘지 사이로 들어가니 뚜렸한 길이 나온다.

다행히 초입부를 찾아 길을 올라가면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 아주 미끄럽다.
가파른 길을 따라가다 암봉을 우회하는 절벽지대를 나무뿌리를 잡아 가며 조심해서 올라간다.
표지기가 거의 없어 어둠속에서 주의해서 올라가다 치악산휴양림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를 지나녀 길은 급격히 고도를 낮추다가 임도로 내려선다.
점차 안개가 걷히며 밝아오는 길을 따라 사거리안부를 넘어서니 그제서야 불쑥 솟아 있는 벼락바위봉이 앞에 모습을 드러난다.
밤사이에 내린 눈은 낙엽을 덮고있고 나뭇가지들마다 상고대가 피여있어 한겨울 날씨같은 모습을 보인다.
나무계단을 밟고 급경사 길을 올라가면 낙엽이 많아 굉장히 미끄럽다.
한동안 오르니 암릉들이 자주 나타나고, 큰 바위사이의 좁은 구멍으로 통과하는 산부인과바위를 지나서 조금 더 오르면 벼락바위봉(939.8m)이다.
암봉에 서면 어둠과 안개를 뚫고 힘겹게 떠오른 태양빛이 조금씩 사방을 비춰주지만 바로 지척에 솟아 있을 치악산과 발아래의 원주시내는 구름에 가려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제법 눈이 쌓여 있는 능선을 내려가면 제천시계종주표지기들이 간간이 붙어 있어 길을 인도해준다.
얼음을 덮고있는 낙엽길은 미끄러워서 몇번을 넘어지며 나뭇가지를 잡고 의지해서 내려가야 한다.
작은 봉우리들을 서너개 넘고 가파른 눈길을 한동안 오르면 수리봉(909.9m)인데 이제서야 작은백운산, 백운산, 조두봉, 그리고 저멀리 촉새봉을 가늠할 수 있으며 백운산 정상은 흰 고깔을 뒤집어 쓴듯 정상부가 온통 흰눈으로 덮혀 있다.
미끄러운 길을 내려가니 싸리나무와 진달래가지들이 빰을 때리고 배낭을 잡아 당긴다.
잘룩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가파른 길을 힘들게 오르면 작은 암봉인 854봉이고 여기서 능선은 북쪽으로 급하게 꺽이며 응달이 들어 아주 미끄럽다.
가느다란 밧줄을 잡고 가파른 암릉길을 내려가 좌우로 길이 희미한 안부를 지나고 곧 오래된 헬기장을 넘는다.
안부를 넘고 헬기장을 지나서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며 작은백운산(984m)에 닿는데 발밑으로는 넓직하게 자리잡고 있는 통신부대와 중계탑이 가깝게 보인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면 찬 바람이 세차게 불고 눈보라가 얼굴을 때린다.
군전화선을 따라 계속 능선을 내려가니 민간인 출입금지 경고판이 서있는 군부대가 나와 철조망을 따라서 백운산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꽤 긴 거리의 철조망을 지나면 소용수골로 내려가는 포장도로가 나오고 군인들이 제설작업을 하는데 초병의 제지로 바로 가지 못하고 포장도로로 내려가다 우회하여 능선으로 붙는다.
계속되는 오르막 길을 오르니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약간 미끄럽지만 발자국을 마음껏 내며 힘을 얻어 올라간다.
진땀을 흘려가며 된비알을 올라가면 곧 백운산(1087.1m) 정상이고 군 통신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근방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임을 증명하는듯 눈이 정강이를 덮을만큼 쌓여있고 사방으로 눈꽃과 상고대가 아름답게 피어 있으며 남북으로 뻗어있는 능선도 온통 은백색의 설원을 이루고 있다.
이 설국의 한가운데에 서서 찬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조망을 보고 있으면 속에서 힘이 솟구치고 억제할 수 없는 자신감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진행방향으로 조두봉이 가깝게 보이고 방화선을 친듯 능선위로 넓직한 길이 낮은 구릉지대와 연결되어 있다.

백운산을 휘도는 미끄러운 길을 조심해서 내려가면 소용수골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보인다.
완만한 길을 내려와 무덤옆의 양지 바른 곳에서 떡을 먹으며 힘을 보충하고 오랫만의 휴식시간을 가진다.
잘린 나무들이 널려있는 넓은 길을 한동안 걸어가다 대용수골에서 올라오는 일반등산로와 만나니 제천시계종주와 원주경계종주 표지기들이 경쟁하듯 달려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점차 가파라지는 눈길을 오랫동안 오르니 넓은 헬기장이 나오고 조금 더 오르면 조두봉(966.6m) 정상이다.
나무가 울창한 정상에서 북쪽 능선으로 들어섰다가 길이 이상해 돌아서지만 원주시 흥업리로 내려가는 길도 아주 뚜렸한 편이다.
서남쪽 방향을 잡고 내려가니 끝이 없이 떨어지는 급한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한동안 내려가면 주위에 임도들이 가깝게 보이고 좌우로 하산로가 뚜렸한 조두치가 나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닌듯 길이 넓직하고 표지기들도 많이 붙어 있다.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가면 잡목들이 아주 무성하고 잔가지가 앞을 가리며 길이 희미해진다.

땀을 뻘뻘 흘리며 능선을 올라서니 능선이 또 보이고 응달진 안부를 지나 가파른 길을 한동안 치고 오르면 그제서야 촉새봉 주능선에 닿는다.
치악산부터 내려오는 능선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꺽어져 촉새봉과 옥녀봉으로 이어지고 북서쪽으로 꺽어지는 능선은 대양아치고개로 내려갔다가 명봉산을 일으킨다.
왼쪽의 남동방향으로 꺽어져 올라가면 눈이 아주 많이 쌓여있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댄다.
눈길을 걸어 돌탑이 서있는 봉우리에 오르니 천은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데 남쪽으로는 마치 소잔등을 보듯 긴 능선과 끝에 솟은 촉새봉이 흰눈을 뒤집어 쓴채 우뚝 서있다.
봉우리에서 완만한 길을 내려가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눈길위로는 떨어진 상고대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눈꽃사이의 길을 올라가니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고 눈보라가 휘날려 얼굴이 화끈화끈하고 감각이 무디어 진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터벅터벅 걷고 오랫동안 올라 드디어 촉새봉(984.8m)에 닿는다.
정상에 서면 치악능선이 흐릿하게 보이고 벼락바위봉에서 조두봉에 이르는능선이 뚜렸하며 멀리에서도 눈에 덮힌 백운산은 인상적으로 보인다.
남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능선을 타면 다리골로 내려갈 수 있지만 교통도 불편하고 원래 오늘의 산행계획이 대양아치로 하산하는 것이어서 되돌아 선다.

돌아가는 길도 오를 때만큼 힘들고 찬바람도 쉼없이 불어와 지친 발걸음이 더욱 더디어진다.
기운을 내서 가파른 눈길을 오르고 눈밭을 뛰듯 내려와 능선 삼거리로 돌아온다.
대양안치 내려가는 길로 들어서면 계속되는 내리막 길이다.
몇차례 나타나는 천은사쪽의 계곡길을 무시하고 능선을 고집하며 내려가니 눈이 점차 적어지더니 고도 700m 이하에서는 뽀송뽀송한 맨땅만 보인다.
작은 암릉들 사이로 내려가면 등로는 서쪽으로 꺽이면서 급한 내리막 길이 이어지고 안부에서 앞에 보이는 암봉을 오르는 길은 아주 급경사여서 긴장이 된다.
암봉을 우회하는 길이 있어서 의심하지 않고 따라 가지만 한참 가다보니 주능선이 옆으로 보인다.
되돌아 가보면 암봉을 우회하지 않고 곧장 올라가는 길이 보이고, 거의 수직절벽을 나무뿌리와 돌을 잡고 주의해서 올라가면 노송들이 멋있게 서있는 692.4봉이다.
전망대같은 바위위에 서니 수많은 산봉들이 보이고 발아래에 천은사 계곡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으며 대양아치를 넘어 가는 도로가 가깝게 보인다.

암릉길을 따라 내려가면 멋있는 노송들이 곳곳에 서있고 바위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산길이 펼쳐지지만 당일로도 충분한 곳을 괜히 무박으로 와서 고생만 했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헬기장을 지나고 잣나무 조림지 사이의 오솔길을 내려가 차단기가 내려진 임도 입구와 만난다.
입산금지 표시판이 서있는 길로 내려가면 원주와 이어지는 19번 국도상의 대양아치고개이며 버스정류장을 찾으며 원주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마침 시내버스가 고개를 넘는다.
손을 휘저으며 버스를 향해 달려가면 더욱 매서워진 겨울 바람이 사정 없이 얼굴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