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300-400미터대 야산에서 2시간의 대형알바와 풀독으로 녹초가 되어 예정된 산행을 마치지도 못하고 이틀째 산행은 포기한 채 집에 돌아와 푹 쉬고나니 서울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려옵니다.
산꾼이 비온다고 산에 안갈 수도 없는 일이라 다시 배낭을 정리해 막걸리 한병 챙겨넣고 지청구 하는 마누라를 뒤로 해서 숨은벽을 알현하러 북한산으로 갑니다.
의정부 가능역 앞에서 구파발 가는 34번 버스를 타고 효자2동에서 내려 굿소리 요란한 국사당을 지나 이정표 서있는 갈림길에서 계곡길을 버리고 왼쪽의 사기막능선으로 올라가면 일요일이라 비가 오는데도 산님들이 많이 보입니다.
부슬부슬 내려오는 비를 맞으며 한적한 흙길 따라 공사자재들이 널려있는 전망봉으로 올라가 운무에 가려있는 맞은편의 노고산을 바라보며 얼려간 페트병에 콜라를 부어 시원하게 몇모금 마시니 몽글몽글 솟아나오던 땀방울이 쑥 들어갑니다.
우산까지 쓰고 가파른 바위지대들을 넘어 처음 나타난 암릉을 왼쪽으로 길게 우회해서 다시 나오는 넓은 암릉을 바로 올라가면 오른쪽으로는 절벽이지만 위험하지는 않고 바위에 뿌린 내린 노송들이 분재처럼 멋지게 보입니다.
등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는 강우탑을 지나고 슬랩지대들을 넘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숨은벽을 바라보니 실제보다도 더 충격적인 모습이라 밧줄 없이 맨손으로 릿지산행을 한다는 분들을 이해하기가 힘들게 됩니다.
이정표대로 오른쪽으로 숨은벽을 우회해 철난간들을 잡고 안부로 내려가 국사당에서 헤어진 계곡길과 합류하면 백운대 암벽에서 빗물이 폭포수가 되어 요란하게 떨어집니다.
물이 흘러내리는 가파른 암벽을 이리저리 땀을 흘리며 오르고 음침한 호랑이굴을 보며 철계단 따라 V안부로 힘겹게 올라서니 안개만 자욱하고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옵니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백운산장으로 내려가 막걸리를 두잔 거푸 마시고 백운대를 올라갈까 하다가 벼락 조심하라는 마눌님의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그냥 우이동으로 향합니다.
거센 빗줄기에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성난 물줄기를 건너 바위꾼들이 담배 피며 담소하는 인수산장을 지나고 하루재에 올라 백운대를 안간 대신 최근 못찾은 영봉으로 향합니다.
반대로 내려오는 사람들을 지나쳐 야간산행때 앉아 막걸리를 마시던, 큰바위들에 소나무들이 서있는 암릉을 지나 헬기장이 있는 영봉으로 올라가면 전에 있던 정상석은 안보이고 바로 앞의 인수봉은 구름에 가려있습니다.
하루재로 돌아와 성가신 돌길을 내려가다가 이정표가 서있는 왼쪽의 영봉 능선으로 들어가니 언제나처럼 호젓하고 완만한 산길이 산객을 반겨줍니다.
살이 다 부러져 반쪽 밖에 펴지지 않는 우산을 쓰고 등산객들이 술추렴을 벌이는 우이동으로 내려가 흠뻑 젖은 몸을 좌석에 앉히지도 못하고 그냥 버스 중간에 서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태풍이 몰려오는 흉폭한 여름은 이렇게 시나브로 지나가고 곧 찬기운에 몸을 움추리게 되는 겨을이 오겠지만 틀림없이 북한산을 흘러내리던 그 우람한 물줄기들은 내내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2011.07.31)
효자2동(11:21)
강우탑(12:29)
숨은벽초입(12:53)
V안부(13:21)
백운산장(13:33)
영봉(14:21)
우이동(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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