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 (Ⅰ)

장쾌한 강원의 산줄기 (가리왕산-중왕산-청옥산)

킬문 2006. 7. 21. 14:13
2001년 9월 27일 (목요일) 

◆ 산행일정
청량리역(22:00)
증산(02:12)
정선(02:48)
회동2교(04:08)
청양골임도(05:34)
주능선(06:25)
중봉(06:27)
가리왕산(07:10)
마항치(08:22)
중왕산(08:56)
벽파령(10:48)
청옥산주능선(11:42)
청옥산(12:09)
임도(12:35)
트럭(13:34)
미탄(14:08)
동서울터미널 

◆ 산행시간
약 10시간 

◆ 후기
정선역 광장으로 나오니 여인숙 간판만 몇개 켜져있고 사방은 쥐죽은듯이 조용하며 열차손님을 기다리는 빈택시만 눈에 띤다.
우선은 요기라도 해야겠기에 광장을 빠져나와 이곳저곳을 다녀보아도 불 켜져있는 곳이 없다.
역앞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따듯한 다방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에서서 대강 5시쯤 오르려 했지만 처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대합실에서 조금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답답해진다.
휴양림근처에는 컵라면이라도 먹을 곳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나와보면 이번에는 택시들이 안 보인다.
이곳 저곳에 전화를 해 택시를 불러타고 휴양림 입구에 도착하니 사방은 고요하고 시커먼 어둠속에 혼자만 남는다.
헤드랜턴을 켜고 매표소 앞의 장승들과 얼음동굴도 구경하고 여기저기를 둘러 보아도 시간은 좀처럼 가지 않는다.

회동2교를 건너가면 관광농원에 있던 큰개가 으르렁대며 쫓아 나오다가 스틱을 휘둘러대니 도망가며 짖어되는데 어둠속에서 불빛에 번쩍거리는 시퍼런 두눈에 슬며시 공포감이 생긴다.
시멘트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계곡 맞은편으로 농가가 한채 있고 길이 있을 것 같아 개울을 건너 들어가 본다.
비어있는 폐가에 다가가자 송아지만한 개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사납게 울부짖으며 덤벼들고 몸부림칠 때마다 목을 묶은 쇠줄이 철커덕하며 흔들려서 금방이라도 개가 튀어 나올 것만 같다.
표지기 한개를 확인하고 서둘러 잡초사이로 올라가니 빈 농가가 또 한채 나타나고 길은 밭사이로 이어진다.
뚜렸한 길을 따라 20분 정도 올라 갔는데도 표지기들도 없고 마을 사람들과 약초꾼들이 다녔던 길이 사방에 있어서 정규 등로가 아닌 곳을 들어서면 고생을 한다는 글이 생각나 다시 내려온다.
도로에서 가로등 불빛에 지도를 비쳐보고 다시 올라가며 보니 등산로를 정비하며 가지치기를 했고 올라갈수록 표지기들이 많이 보인다.

찰흑같은 어둠을 뚫고 올라가면 경사가 점점 가팔라지며 정적속에 내가 뱉는 거친 숨소리만이 들린다.
잔돌이 많은 급경사 길을 올라가면 굉장히 미끄럽고 발을 디딜 때마다 큰 돌멩이들이 굴러 떨어진다.
땀으로 상의를 흠뻑 적시고 한구비 올라치면 희뿌연 어둠속에 임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작은 이정표뒤의 절개지로 사람들이 올라간 흔적이 보인다.
7-8미터 이상되는 수직 절개지를 튀어나온 돌멩이들과 나뭇뿌리를 잡아가며 올라가지만 미끄럽고 실족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
완만해지는 길을 올라가면 점차 여명이 밝아오며 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기 시작하고 아름드리 거목들이 자주 나타나며 자작나무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이정표가 서있는 주능선에 오르니 막 일출이 시작되어 잿빛 구름사이로도 햇빛이 환하게 비추고 주위의 봉우리들은 반짝거리며 머리를 드러낸다.
오른쪽은 하봉과 오잠동 임도로 갈 수있고 왼쪽으로 꺽어져 올라가면 헬기장을 거쳐 바로 중봉(1433m)이다.
정상은 나무들이 울창해서 조망이 좋지 않으며 돌탑이 서있고 큰돌에 중봉이라고 쓰여있다.

중봉을 지나면 온갖 초본류들이 산길을 가득 메우며 돋아있어 봄에는 나물 천국일 것 같으며 새빨간 단풍잎과 빛바랜 활엽수들이 어우러져 점점 익어가는 가리왕산의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굴곡 없는 평탄한 길을 한동안 가면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듯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는 가리왕산 상봉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멋있는 주목들을 보며 올라가 장구목이골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지나고 관목지대를 넘어 무인송신탑을 지나 바로 가리왕산(1560.6m)에 닿는다.
넓직한 정상에는 돌로 쌓은 제단들과 가리왕산을 소개할 때 항상 나오는 고사목이 서있으며 키 작은 관목들과 잡초들이 무성하고 헬기장이 있다.
발밑에는 정선일대가 넓게 펼쳐지며 태백의 여러 고산준봉들이 만들어내는 백두대간이 아스라하게 보이고 중왕산에서 청옥산을 지나 정선쪽으로 휘감아 달리는 산맥도 뚜렸하게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주위의 여러 경치를 보고 있으니 세찬 바람이 불고 한기가 몰려와 땀에 젖은 몸은 떨리고 손이 시려오기 시작한다.
그전부터 꿈꿔오던 가리왕산이지만 정상에서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고 중왕산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키작은 관목사이로 내려가 헬기장에 앉아 김밥으로 아침을 먹으면 따스한 햇살이 언몸을 녹여준다.
간간이 눈에 띠는 고사목들을 보며 내려가면 절터와 어은골로 해서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나오고 갈림길을 지나 주능선으로 향한다.
희미해진 길을 따라가면 울창한 나무들로 주위는 막혀있고 멧돼지의 소행인지 여기저기에 땅이 많이 파여있다.
평지같은 능선길을 따라가다 봉우리를 넘어서 급경사 오솔길을 한동안 내려가면 "강릉부 산삼봉표석"이 세워져있는 유적지가 나타난다.
1992년에 임도를 딱다가 발견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가리왕산이 깊은 산이며 전부터 산삼과 약초가 많이 나오는 명산임을 짐작할수 있다.
봉표석을 구경하고 시멘트계단을 내려가니 네갈래 임도가 만나는 마항치인데 등산로 안내판이 서있고 간이화장실과 입산통제소가 있다.
전에는 교통의 요지였을 고개지만 지금은 인적이 끊겨 적적하고 날라다니는 벌소리만 요란하다.

화장실뒤로 중왕산 가는 길이 있지만 희미하고 이정표도 없어 표지기를 하나 붙이고 올라선다.
잡목사이로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고 진땀을 흘려가며 올라가도 다른 봉우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땅바닥만 쳐다보며 급경사 길을 한걸음 한걸음 오르면 중왕산(1376.1m)에 도착하는데 주위의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 사방이 훤하게 보이고 북쪽으로는 잠두산과 백석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이 꿈틀거린다.
벽파령으로 가는 남쪽 능선으로 들어서니 웃자란 잡초지대를 통과하고 이내 길은 좋아진다.
울창한 수림사이로 한적한 길을 내려가면 백일동으로 하산하는 뚜렷한 갈림길을 지나고도 계속 내리막 길이 이어지는데 역시 백일동 하산로로 생각되어 다시 올라온다.
몇번을 오르내리며 자세히 보니 능선길은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혀 분간하기가 힘들고 오래된 표지기 하나만이 길임을 확인해준다.

주능선으로 들어서면 길은 아주 희미하고 낧은 표지기들이 이따금씩 붙어 있지만 최근의 인적은 찾기 힘들다.
키작은 산죽 사이의 길은 중간중간에 끊기고 사라지며 원시림같은 숲속길을 걸어가니 정적속에 이따금씩 새소리만 들리고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다.
고저차가 별로 없는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며 가시덤불과 잡초들을 헤치면 온몸이 땀으로 젖고 까시에 찔려 따끔거린다.
바위가 많은 1245봉을 내려 가면 나무와 철사로 정교하게 만든 올가미가 놓여있어 모두 발로 부숴 버린다.
곧 삼거리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뚜렸한 길은 임도로 내려가는 길이라 표지기 한개가 붙어있는 오른쪽의 희미한 길로 꺽어진다.
계속 나타나는 올가미들을 제거하고 길이 헷갈리는 암봉을 조심해서 잡초가 무성한 벽파령(840m)에 내려선다.
헬기장이 있는 벽파령은 온통 키를 넘는 잡초들로 뒤덮혀 있으며 사방에 풀벌레 투성이지만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어 포근하고 아늑하다.

능선을 계속 오르고 임도를 넘어서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숲길로 들어서면 거대한 송전탑을 지나면서 길은 희미해진다.
있는듯 없는듯한 숲속 길을 능선만 따라서 가다보니 약초꾼들이 표시해둔 헝겊들이 간간이 눈에 들어오고 페트병등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다.
한동안 올라 남병산에서 이어지는 주능선과 만나면서 길도 좋아지고 표지기들도 간간이 붙어있다.
뚜렸한 길을 올라가다 정상 주변에서는 다시 길이 애매해지며 등산객들이 헤멘듯 표지기들이 어지럽게 붙어있다.
길을 찾으며 올라가 삼각점이 박힌 봉우리를 지나고 조금 더 오르면 청옥산(1255.7m)이다.
작은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상은 수림이 빽빽해 사방이 막혀있고 금속판에 청옥산의 유래와 육백마지기로 불릴만큼 넓은 밭이 정상에 있다는 설명이 적혀있다.

정상에서 표지기들을 확인하며 서쪽으로 나있는 하산로로 의심하지 않고 내려가면 넓은 초원지대가 나타나고 왼쪽으로 광대한 고랭지채소밭이 모습을 드러낸다.
초원을 통과하고 잣나무 단지를 내려가니 임도가 나오고 큰 목장이 보인다.
임도는 사방으로 산을 관통해서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않되며 산밑의 계곡 끝으로 멀리 민가들이 작게 보인다.
주위를 돌아다니며 하산로를 찾아 보아도 임도말고는 마땅히 내려갈 곳이 없다.
목장옆의 전기철조망을 따라 내려가다 건천이 패인 곳으로 들어가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발밑으로 보이던 또 다른 임도가 나오고 이제 임도따라 산을 구비구비 돈다.
너덜지대처럼 크고 작은 돌들로 덮여있는 임도는 산사태로 여기저기가 갈라져있고 패여있다.
따가운 햇빛을 맞으며 다람쥐들이 뛰노는 길을 내려가면 물줄기가 보이지만 광산때문인지 물이 회색빛이라 딱는 것을 포기한다.

거미줄처럼 나있는 임도를 한동안 내려가다 주민에게 위치를 물어보니 계속 내려가면 미탄이고 목적지인 지동리는 산너머라고 한다.
원래 계획은 청옥산에서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가다 지동리로 하산하려 했는데 아마 청옥산 정상 바로 전에서 갈라지는 능선을 부주의로 놓쳤을 것이다.
날카로운 절벽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끝이 보이지 않는 임도를 내려가다 보니 트럭이 멈추며 태워준다.
트럭 짐칸에 타고 꼬불꼬불한 비포장길을 흔들리며 내려가면 미탄면 회동2리가 나오고 "수리재"라고 쓰인 지형석이 서있으며 옆에 청옥산등산로 안내판이 크게 세워져 있다.
포장도로에서도 한동안 가면 회동1리이고 차를 내려서 10여분 걸으면 미탄면소재지에 도착한다.
공사현장의 수돗가에서 대충 씻고 정류장앞의 가게에 앉아 찬 맥주 한잔을 마시며 동서울행 버스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