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 (Ⅰ)

울고 넘는 박달재에서 가리파재로 (주론산-구학산-벼락바위봉)

킬문 2006. 7. 21. 17:47

2002년 3월 7일 (목요일) 

◆ 산행일정
동서울터미널(06:30)
제천터미널(08:05)
박달재(08:32)
전망대(09:19)
임도(09:44)
주론산(10:32)
구학산(11:52)
구력재(14:17)
임도(15:06)
924봉(15:36)
벼락바위봉(16:35)
휴양림임도(17:18)
휴양림갈림길(17:36)
가리파재(18:10) 

원주터미널

◆ 산행시간
약 9시간 38분 

◆ 후기
제천에서 택시를 타고 박달재로 향하면 지금은 터널이 뚫려 차량 통행이 별로 없는 꼬불꼬불한 구도로를 올라가는데 길바닥은 눈과 얼음으로 반질반질하다.
청소년수련원과 식당들이 있는 그 유명한 박달재 정상에서 산행준비를 하니 날은 맑고 푸르른 하늘이 펼쳐져 아주 상쾌하다.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장승이 서있는 성황당 옆으로 올라가 능선으로 붙는다.(08:32)
조금 올라가니 어제까지 내린 눈으로 나무들마다 온통 눈꽃을 이고있고 눈은 발목을 덮는다.
소나무들이 빽빽한 상큼한 길을 올라가니 박달재휴양림의 철망이 막고 굵은 자물쇠가 걸려있지만 등로는 휴양림 안으로 연결되어서 과감히 철망을 뛰어 넘어간다.
미끄러운 급경사 길을 한동안 오르니 전망대라고 적어 놓은 봉우리가 나오는데 박달재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천등산과 시랑산이 가깝게 보이며 휴게소에서 틀어 놓은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가 산자락에 쩌렁쩌렁 울려댄다.(09:19)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점점 눈이 많아져서 정강이까지 빠지기 시작하는데 초반부터 이렇게 러쎌을 하고 가리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다.
이렇게 눈이 많으면 목표로 했던 가리파재까지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주론산과 구학산은 일반 산행지로도 널리 알려졌으니 아마 러쎌이 되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평탄한 눈길을 내려가면 오래된 임도가 나오는데 왼쪽은 정은사와 휴양림길이고 오른쪽은 조백석골로 해서 유명한 베론성지로 내려가는 길이며 휴양림에서 설치한 안내판이 서있다.(09:44)
임도를 건너니 전날까지 내린 신설은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쭉쭉 미끄러져서 오르기가 아주 고역이다.
힘들여서 된비알을 넘고 잘 정돈된 묘 한기를 지나서 땀을 흘리며 올라가다 보면 정상 바로 밑에 머리에 눈을 잔뜩 지고 있는 아름드리 노송이 인상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급경사 눈길을 한구비 올려치면 전위봉이고 조금 더 오르니 주론산(903m)이다.(10:32)
정상에서는 바로 앞에 구학산이 서있고 그뒤로 백운산 주능선과 촉새봉 능선이 병풍을 두른듯 펼쳐지고 치악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능선은 동쪽으로 휘어지며 작은 봉우리와 연결되고 여기서 구학산을 바라보며 북쪽으로 꺽어진다.
낙엽이 잔뜩 깔려있는 호젓한 능선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고 한발자국씩 러쎌을 하고가니 힘도 들고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
인적 없는 눈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면 홀연히 찬바람이 불어오며 추워지고 고독감과 쓸쓸함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비박하기 좋아 보이는 암봉들을 우회하고 가파른 경사길을 한동안 오르면 구학산(971m)인데 암봉과 노송들이 어우러져 아름답다.(11:52)
아홉마리의 학들이 내려가 주위의 마을들을 만들었다고 하는 정상에서 보는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라 삼봉산과 촉새봉이 가깝고 구력재로 고도를 낮추어가다 벼락바위봉으로 솟구치는 능선봉들이 확연하며 치악능선은 웅장하게 보인다.
동쪽 능선은 구학산의 일반 등산로로 많이 이용되는 방학동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구력재는 왼쪽의 북쪽 능선으로 내려가야 한다.
산행을 준비하면서 구학산에서 구력재까지의 구간이 어떨까 걱정을 했는데 바로 발밑으로 주능선이 연결되고 고개가 내려다 보이니 무난하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에 서서 떡으로 점심을 먹고 오랫만의 휴식시간을 가져본다.

정상에서 경사가 가파른 비탈을 조심해서 내려와 암봉을 우회해서 주능선으로 붙는다.
희미한 길에는 잡목이 무성하고 싸리나무 가지들이 많아 수시로 얼굴을 때리지만 조금 진행하니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제천시계종주" 표지기가 눈에 띈다.
제천시계는 동쪽의 감악봉에서 서쪽의 구학산으로 연결되고 구력재와 벼락바위봉을 거쳐 백운산과 촉새봉으로 이어지니 벼락바위봉까지는 이 표지기를 참조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잡목을 헤치며 내려가면 좌측으로 하산하는 길들이 종종 보이고 표지기도 붙어있지만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고개 가까이 내려가니 갈라지는 지능선들이 수시로 나타나고 방향을 잡기가 힘들지만 북쪽 능선만 찾으며 내려간다.
희미한 길을 한동안 내려가다 보니 마을이 가깝게 나타나고 왼쪽 옆으로 뚜렸한 주능선이 올려다 보여 망설이다가 다시 내려온 길을 올라간다.
잡목이 빽빽한 가파른 길을 올라가니 땀이 비오는듯 하고 누가 봐도 길이 아닌 곳을 어떻게 해서 내려왔는지 후회가 되고 짜증이 난다.
한 20여분 올라와 갈림길에 도달하면 마치 한강기맥에서 종종 보던 것 처럼 길 같지 않은 곳으로 능선이 꺽어져 나간다.
얕으막한 봉우리들을 넘고 억새길을 내려가니 제천시 백운면과 원주시 신림면의 경계인 구력재인데 2차선도로는 차량통행이 뜸하고 한적하다.(14:17)

철망옆의 절개지를 기어 올라 능선으로 붙으니 "원주경계산행"표지기가 반겨주고 구학산에서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한다.
동쪽으로 돌아가는 가파른 능선을 올라가다 다시 북서쪽으로 급하게 꺽인다.
기온이 올라 녹기 시작하는 눈길은 미끄럽고 푹푹 빠져서 갈길 바쁜 다리를 붙잡는다.
조금 올라가니 아주 낡아서 글씨도 잘 안보이는 "정기원의 등산정보" 표지기가 붙어있는데 현재 산정산악회를 운영하는 잘 아는 분이라 반갑다.
한동안 임도를 보며 걸어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금창리의 민가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다시 급경사 오르막 길이 시작된다.
잡목이 무성한 길을 힘들여 올라가니 또 다른 봉우리가 보이고 오르막 길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작은 봉우리들을 넘고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 가뿐 숨을 내쉬며 924봉에 오르면 백운산 주능선이 가깝게 보이기 시작한다.(15:36)

봉우리를 내려가면 신림면쪽으로 대규모 벌목지가 나타나는데 산 한쪽면의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내 쌓아 놓았고 지나가는 길에도 몇십년 묵은 소나무들이 마구 잘려나가 있다.
허가는 받고 벌목을 했겠지만 이렇게 민둥산을 만들어 놓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벌목지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면 노송이 많은 수려한 암봉이 나오고 맞은 편으로 벼락바위봉이 가깝게 솟아 있다.
암봉을 돌아 내려가니 오늘 처음으로 사람 발자국이 보이고 안부로 내려섰다가 가파른 오르막 길을 오르면 바로 벼락바위봉(939.8m)이다.(16:35)
작년 겨울에 가리파재에서 큰양아치까지 종주하면서 이곳에 올랐으니 3개월만에 다시 온 셈이고 정상에 서니 치악산의 능선봉들과 백덕산이 가깝게 보이고 저멀리 소백산과 백두대간의 물결이 도도히 흐른다.

정상에서 내려가 백운산 종주 때는 못보고 지나쳤던 벼락바위에 올라서니 발밑으로는 까마득한 절벽이고 원주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바위틈의 좁은 구멍을 통과하고 얼어 붙은 암릉길을 조심해서 내려간다.
러쎌이 되어있는 눈길을 한동안 가면 치악산휴양림과 연결되는 임도를 넘고 다시 급경사 오르막 길이 기다린다.
눈이 녹아서 질퍽거리는 길을 숨가뿌게 올라 봉우리를 넘으니 이제 해는 벼락바위봉에 걸쳐져 있고 조금 있으면 일몰이 시작될 것이다.
조금 내려가면 그나마 덕 좀 봤던 발자국은 마을쪽으로 내려가 버리고 다시 러쎌을 한다.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갈림길을 지나면 눈은 더욱 많이 쌓여있고 낙엽밑으로 길은 희미한데 암봉을 우회해 내려가다가 그만 칠봉암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놓친다.
나무들을 헤치고 바위들 사이로 주능선만 따라 무작정 내려가니 희미한 길이 보이고 곧 칠봉암 올라가는 길과 만난다.
고속도로 밑으로 국도를 따라가면 남대봉 초입부인 망경사 길이 나오고 가리파재에 도착하니 해는 뉘였뉘였 지기 시작하고 찬바람이 사정없이 불어댄다.(18:10)
옷에 묻은 눈을 털어대며 지나가는 차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어 본다.


원주에 도착해서 전에 전화 통화만 몇번 했던 고든치님과 만나 삽겹살에 소주 한잔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주대학에 근무하시는 고든치님은 나보다 3살인가 연하신데 호남형이시고 서글서글한 성격이 초면이지만 오래된 친구를 만난듯 하다.
저녁도 사주고 터미널까지 배웅해 주시니 신세만 진 셈이지만 산꾼들의 끈끈한 동료애를 본 듯해 마음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