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부실해서인지 아니면 의지가 박약해서인지 전날 산행의 여파를 못 이겨 새벽에 일어나지 못해 부모님이 계신 괴산 땅을 못 가고는 주섬주섬 배낭을 꾸려 느지막이 집을 나와 구태의연하게 막걸리 한 병 챙겨서 전철을 타고 사당역으로 나간다. 북적이는 인파들과 함께 전망 데크가 있는 태극기 암 봉에 올라 약한 몸뚱이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고 간혹 증상이 오는 양 무릎에 신경을 쓰며 바위지대를 따라가다 벙커 봉에 올라 박무에 가린 서울 시가지를 바라보며 찬 막걸리 한 컵 마시며 쉬고 헬기장과 데크 쉼터들을 연신 지난다. 피곤해서인지 다른 때보다 쉽게 줄어들지 않는 거리를 느끼며 관악문을 통과하고 가파르게 이어지는 나무 계단들을 넘어서 형형색색의 인파들로 가득 찬 관악산에 올라 긴 줄을 서서 촬영 순서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을 지나쳐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말바위 암 능을 타고 학바위 능선으로 꺾어진다. 한편의 바위에 앉아 옆에서 신나는 하모니카에 맞춰 흘러간 옛 노래를 떼 창하는 중년 아주머니들의 희열찬 소리를 안주 삼아 찐 고구마와 막걸리로 점심을 대강 때우고 삼성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겨냥해서 학바위 능선을 타고 암 능들을 넘는다. 능선을 계속 타고 학바위를 넘어 혹시 왕관바위로 바로 질러가는 길이 없냐고 물어보는 중년 등산객을 지나쳐 약수터 삼거리로 떨어져 무너미고개를 건너서 2주 전에 왔었던 그 산으로 올라간다. 전에 쉬었던 데크 전망대에 앉아 관악산의 전경을 바라보며 다시 남은 막걸리를 들이켜고 도로 따라 삼성산에 올라 안양으로 길게 이어지는 남쪽 능선으로 들어간다. 철 줄이 달린 암벽을 통과해 아기자기한 바위지대들을 지나 태극기가 펄럭이는 국기봉을 넘고 한편의 바위에 앉아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마지막 막걸리를 따라 마시고 웬일인지 요즘 부쩍 당기는 단 과자들로 입을 즐겁게 하다가 이어지는 험준한 암 능들을 조심스레 넘는다. 염불암 갈림길을 지나 바위들이 사라진 유순한 흙길 능선을 끝까지 타고 안양예술공원으로 떨어져 계곡 가에서 물놀이 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편의점에서 찬 캔 맥주 하나로 목을 축이며 젖은 옷을 갈아입고 한 시간도 넘게 걸어 관악역에 도착해 피곤한 몸으로 전철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