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 (Ⅰ)

뚝심이 없어 실패한 산행 (바위산-매봉-수산재-신남)

킬문 2006. 7. 20. 15:18
2001년 5월 17일 (목요일) 

◆ 산행일정
동서울터미널(06:15)
춘천터미널(07:50)
소양댐선착장(08:10)
선착장출발(08:50)
조교리선착장(09:20)
주능선(10:40)
바위산(10:50)
765봉(11:15)
수산재(11:45)
매봉(12:38)
무명봉(13:32)
돌아옴(14:20)
매봉집터(15:12)
돌아오다(16:01)
매봉집터(16:58)
매봉(17:05)
수산재(17:48)
첫민가(18:48)
신남(19:00) 

◆ 산행시간
약 9시간 28분 

◆ 후기
이번 산행은 춘천시 북산면에 있는 바위산을 오르고 남쪽의 매봉을 거친 다음 홍천고개로 내려서서 멀리 가리산까지 이어보는 원대한 계획을 잡았다.
바위산은 소양호가 생긴 후로는 더욱 오지의 산이 되어 찾는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이라 하고 매봉은 바위산에서 약 3km 남쪽에 있는 봉우리이며 가리산은 춘천시 북산면과 홍천군 두촌면의 경계에 있는 잘 알려진 산으로서 매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주능선과 연결되어 있다.
바위산은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조교리에서 내려 올라야하는데 배는 아침 8시30분과 오후 4시 두번밖에 없으며 조교리에서는 오후 5시 배를 타고 댐으로 갈수 있으나 타는 사람이 없으면 오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유람선 사무장:011-9797-4833, 017-404-4835 소양댐선착장:033- 242-4832)
원래는 바위산과 수산재와 매봉을 잇고 되돌아 내려와 수산재에서 조교리로 원점회귀해 배를 타고 소양댐으로 오는 계획이었으나 같은 능선상에 솟아있는 가리산을 보니 그만 욕심이 생기고 말았다.
즉 매봉에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 홍천고개에 내려서서 상황을 본 다음 가능하면 가리산까지 빼서 홍천쪽의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먼 거리이고 좀 무모해 보여도 홍천고개에 일찍만 내려오면 가능한 일이고 정 않되면 홍천고개에서 홍천과 인제를 잇는 44번국도로 탈출하면 된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배시간 때문에 새벽 일찍 산행을 할 수 없어 여유시간이 10시간 정도로 짧은 점과 매봉부터 가리산 까지의 구간상태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여하튼 가보고 결정하자는 생각과 여차하면 비박이라도 한다는 각오를 하고 의정부에서 새벽 일찍 출발한다.

동서울에서 6시15분 버스를 타고 춘천에 도착하니 7시50분으로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조교리행 첫 배가 8시30분이라 택시를 타고 바삐 소양댐으로 향하니 공지천에서 피여나는 물안개로 도시는 온통 뿌옇고 학생들과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선착장은 평일이라 한가하고 조교리 가는 큰 배에 오르니 손님은 나까지 달랑 두명뿐이다.
조교리에 있는 집을 팔러 이장집에 간다는 나이 드신 남자분과 12인승 작은 쾌속선으로 옮겨 타니 배는 빠른 속도로 물길을 뚫고 나아간다.
오랫동안 가뭄이 들어 물이 많이 빠져있고 물 밖으로 노출된 앙상한 나무뿌리들이 안스러워 보인다.
조교리 선착장에 도착하니 낚시꾼 몇명만 보이고 물이 빠져 드러난 땅은 황량하고 잡초만 듬성듬성하다.
오후 배를 탈려면 3시30분 이전에 전화해야 한다고 몇번이나 다짐을 하며 배는 바로 선착장을 빠져 나간다.

맑은 물이 흘러 내리는 개울 옆으로 시멘트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도둑 없는 마을 조교2리"라 쓰여있고 조교리자연학습장 팻말을 지나니 왼쪽으로 꺽어져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마을 입구의 다리를 건너 몇채의 민가를 지나고 토끼와 닭을 치는 마지막 외딴 농가를 지나 산길로 들어가면 여름처럼 날이 덥고 시작부터 땀이 나기 시작한다.
잔돌이 많이 깔려있는 좁은 등산로를 따라가니 수림은 울창해 하늘은 보이지 않고 음습한 분위기가 들며 아주 적적하다.
앞을 막는 덩쿨나무와 잡목가지들을 헤치고 오랫동안 올라가면 길은 점차 희미해지나 표지기들이 간간이 붙어있어 도움이 된다.
뚜렸한 길을 따라가다 물이 말라 버린듯한 건천지대를 만나니 갑자기 길이 끊어진다.
바위사이의 흔적을 찾아 조심해서 올라가면 전에 왔던 등산객들이 헤매었던 듯 엉뚱한 곳에 매달아 놓은 표지기도 보인다.
너덜지대를 벗어나면 코가 땅바닥에 닿을듯한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된다.
나뭇가지들을 잡고 네발로 땅바닥을 기면서 20여분 올라가니 비로소 하늘이 열리며 주능선에 닿는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능선을 오르다가 험준한 암릉을 타고 넘어 바위산(857.7m)에 오른다.
정상에는 돌무더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몇그루의 고사목들이 있으며 북쪽은 깍아지른 절벽이다.
사방에 보이는 것은 온통 수림의 푸른 물결뿐이며 남쪽의 매봉 말고는 흐릿해서 잘 관찰이 되지않고 소양호도 일부만 보일 뿐이다.

정상에서 내려가면 중밭골로 해서 조교리로 바로 내려가는 지름길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매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활처럼 휘어진다.
옆으로 꺽어져 철쭉사이의 등산로를 내려가 작은 봉우리들을 넘으니 765봉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북쪽으로는 대동치를 지나 계명산을 넘어 양구 근처의 소양호까지 긴 능선이 이어진다.
봉우리를 내려가면 길은 점차 희미해지고 원시림처럼 숲이 울창해서 족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내려가니 옷과 목덜미에는 이름모를 애벌레들과 송충이들이 여기저기에 붙어있어 떼어내기에 바쁘고 얼굴에 붙은 거미줄들이 갈길을 막는다.
하늘이 좀 트인곳에서 언뜻 보면 오늘 목표로 삼은 주능선이 보이고 그 정점에는 가리산 쌍봉이 까마득하게하게 솟아있다.
목표를 보고 난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빨라지고 서둘러져서 뛰듯이 내려간다.
떡깔나무가 울창한 숲을 지나고 빽빽한 노송들을 따라 내려가면 넓은 안부로 되어있는 수산재인데 왼쪽은 수산리와 연결되는 넓은 임도가 닿아있고 오른쪽은 중밭골을 따라 조교리로 갈 수 있으며 소를 방목하는 곳이라고 하지만 인적도 없고 쓸쓸하며 쓰레기들만 널려있다.
바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이 무성하고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매우 미끄럽다.
계속되는 가파른 길을 힘들게 오르면 뚜렷한 등로는 없고 나뭇가지들이 길을 막아선다.
주능선만 따라서 밀림같은 수목지대를 한동안 헤치고 오르니 매봉(800.3m)에 닿는데 여기에서 동쪽으로는 거니고개와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홍천고개로 내려갈 수 있다.
정상에는 표지기가 몇개 달려있고 삼각점도 있지만 나무가 워낙 빽빽해서 주위는 전혀 조망이 되지 않고 구덩이에 걸려있는 널판지 하나만이 옛날 사람의 흔적을 보여준다.

나침반으로 정남 방향의 능선을 찾아 낙엽을 헤치며 잠시 내려가면 무너진 작은 집터가 나타나고 오른쪽으로 뚜렸한 소로가 보이는데 아마도 조교리로 내려가는 길인듯 하다.
아주 작은 집터라 송이채취꾼 같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머물던 곳 같고 사람이 계속 살던 곳은 아닌 것 같다.
집터를 지나 계속 남쪽능선으로 내려가니 길다운 길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낙엽이 잔뜩 쌓여있는 능선과 주위의 울창한 나무와 숲들 그리고 사방으로 보이는 수많은 산들과 또 중첩되어 나타나는 산봉우리들만 나타난다.
계속 나타나는 갈림길에서는 나침반으로 정남방향을 찾고 약간이라도 뚜렸한 능선을 골라서 나아간다.
이런 첩첩산중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길을 잃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긴장감이 들고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점차 고도를 낮추며 한참동안 내려가던 길은 다시 두갈래의 능선으로 나누어진다.
지도상의 위치를 어림잡아 짐작하니 주능선은 남서쪽으로 꺽어지므로 오른쪽 길로 가야 하지만 그쪽은 베어진 나무가 바닥에 쓰러져 있어 일부러 막아 놓은 것인지 판단을 할 수 없다.
남동을 가리키는 왼쪽길은 다소 뚜렸하고 오른쪽 길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지도상의 길과 일치한다.
과연 어느쪽으로 가야하나 한동안 고민하다가 결국은 내 판단을 믿고 오른쪽 능선으로 들어선다.

낙엽을 밟으며 똑같이 반복대는 지루한 길을 헤쳐가다 자그마한 암봉위에 올라선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물을 마시고 쉬다보면 이 지긋지긋한 수림의 바다에서 얼른 빠져 나가고 싶은 마음만 든다.
능선을 좀더 내려가 작은 봉우리에 오르니 앞면에는 "중소기업은행" 뒷면에는 "자연보호"라고 쓰인 빨간색 프라스틱 표지기가 나무가지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맞는 길로 가고 있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이런 오지에 왔던 사람들이 궁굼해지며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봉우리를 지나 좀 더 내려가다 보면 점차 능선이 끊어지고 길이 없어진다.
왼쪽으로 급사면을 타고 5분정도 내려가 보지만 까시나무만 무성하고 다시 올라와 오른쪽으로 내려가 보아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홍천고개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매봉을 거쳐 수산재로 내려가 시간이 되면 조교리로 내려 가던지 아니면 임도를 따라 수산리로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판단을 굳히고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기로 결심한다.
왔던 길을 다시 가는 것은 아주 힘 빠지는 일이고 계속되는 오르막 길은 진땀을 빼게한다.
시간은 점점 가고 마음은 급해져 발걸음이 바빠진다.
낙엽속에 남아있는 내 발자국을 쳐다보며 뛰듯이 내려가다 무엇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며 낙엽에 사정없이 딩군다.
먼지를 털며 일어나 보니 누군가 나무사이에 철조망을 매달아 마치 덪처럼 장치했는데 바지가 좀 찟어지고 팔이 긇혔어도 다행히 큰 부상은 없다.
아까의 갈림길에 닿으니 홍천고개 가는 길은 옆길로 추측 되어도 확실한 자신감이 없어 포기하고 지나간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남은 힘을 쏟고 오르막 길을 한참동안 올라가서 집터에 닿는다.
집터 왼쪽으로 보이는 뚜렸한 길이 조교리 가는 길이라 생각되어 휴대폰으로 유람선에 연락을 해보지만 통화불능 지역이다.
연락이 않되어도 조교리에서 배를 타는 사람이 있고 17시 이전에만 선착장에 도착하면 소양댐으로 가는 배를 탈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조교리에서 배를 타는 것은 불확실하지만 타기만 하면 교통이 아주 좋고 수산재에서 수산리로 내려가는 것은 길은 확실하지만 교통이 굉장히 좋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에서 교차되지만 일단 조교리로 내려가서 정 배가 없으면 모타보트라도 부른다는 결정을 한다.
결심을 하고 매봉 올라가는 길을 지나쳐 능선을 따라 나있는 오솔길로 꺽어진다.
뚜렸한 길을 뛰듯이 달려 내려가면 시원한 바람도 불어주고 배를 탈 수 있다는 희망에 힘이 솟아난다.
꼬불꼬불한 길을 내려가니 오른쪽으로는 바위산이 우뚝 서있고 밑으로 중밭골 계곡이 펼쳐져 있으며 조교리 마을의 위치도 대강 짐작된다.

점차 고도를 낮추며 내려가는 길은 점점 희미해지더니 오래된 무덤가에 이르자 그만 길은 없어져 버린다. 앞으로 더 진행해 보나 길은 없고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여기저기 찾아 보지만 길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온길을 되돌아가 길을 찾다보니 옆으로 꺽어지는 희미한 족적이 있어 따라가 보지만 오래된 노송들만 나타나고 절벽이 가로 막는다.
여기까지 왔는데 또 길이 없어지니 정말 난감해진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물을 마시며 땀을 딱고 당황돼는 마음을 추스르며 상황판단을 한다.
이제는 조교리로 내려가도 배를 탈 가능성이 없고 어차피 다시 매봉으로 올라가 수산재로 내려가서 임도를 타고 수산리로 가야만 한다.
혹시라도 매봉 올라가는 길을 다시 놓치면 정말 조난 당하는 것이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간다.
기운이 빠져 뻣뻣해진 다리를 끌며 오르막 길을 오르니 진땀이 흐르고 숨이 턱에 닿는다.

가다쉬다를 반복하며 능선을 오르다 배 하나를 깍아 먹지만 속은 미식미식해서 받지도 않고 물만 자꾸 마시게 된다.
남아있는 초코렛과 빵을 털어 넣고 마지막 힘을 내서 오르막 길을 힘겹게 올라와 집터로 돌아온다.
이제는 남아있는 시간도 별로 없어서 능선을 타고 바로 매봉으로 올라가니 땀이 비오는듯 하다.
매봉에서 수산재로 내려가는 북쪽 능선으로 들어서면 계속되는 밀림이 정말로 지긋지긋해진다.
길이 애매한 곳에서는 올라왔던 흔적을 찾아 나아가고 주의해서 주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날은 점차 서늘해진다.
낙엽때문에 미끄러운 길을 오랫동안 내려가서 다시 수산재로 돌아간다.

수산재까지 오니 이제야 마음이 놓여 미적지근해진 물 한모금 마시고 목청껏 소리를 질러 스스로를 격려하고 힘을 낸다.
넓은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가리산의 쌍봉이 능선 사이로 마치 비웃는듯 우뚝 솟아있다.
물결치는 산들 사이로 꼬불꼬불하게 내려가는 임도는 끝이 없어 보이고 계곡으로는 인가도 인공시설물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임도를 한참 내려가니 조그마한 이정표에 위로는 2.0km 밑으로는 7.5km라고 쓰여있다.
어디로 닿는지도 모르는 길을 끝이 없이 가다 보면 검은색 상의는 간수를 뿌린 것처럼 소금이 허옇게 묻어나 있고 얼굴과 양팔은 온통 먼지 투성이이다.
물가에서 좀 딱고 가려해도 계곡을 4-50미터 내려가야 물길이 보여 포기한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후줄근해진 다리를 끌며 하염없이 내려가다 보면 수산리의 농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루에 앉아 채소를 다듬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계속 가면 신남이 나오지만 버스는 없으며 걸어서는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차를 얻어 탈 수 없을까 두리번 거리며 내려가다 집안 일을 하는 젋은 청년에게 다시 물어보니 신남은 너무 멀어 걸어서는 갈 수 없다며 고맙게도 자기가 태워주겠노라고 한다.
찝차를 타고 자갈투성이의 비포장 길을 오랫동안 내려와서도 소양호 옆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로 한참 내려가니 신남이 나온다.
매표소에서 상봉동행 표를 사자마자 맞은편으로 버스가 도착하는 것이 보인다.
손을 흔들며 도로를 무단횡단해 얼굴도 딱지 못한 지저분한 모습으로 땀냄새를 풀풀 풍기며 버스에 오른다.

앞자리에 앉아 편한 자세로 가다가 그만 철정검문소에서 경찰의 검문을 받고 버티다가 버스에서 끌려 나온다.
"거수자" 신고를 받고 나를 기다렸다는 경찰들의 간단한 심문을 받고 기다리던 버스는 탈 수 있었지만 처음 만났던 아주머니가 신고한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해 진다.
허나 허옇게 소금이 묻어 나오는 검은 상의를 입고 바지는 철조망에 걸려 찟어졌으며 얼굴이고 손이고 온통 먼지와 땀과 덤불투성이니 어느 누구라도 의심할만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버스는 가리산 자연휴양림을 지나서 어둠을 뚫고 홍천으로 쏜살같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