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 47

저체온증

연휴여서 막히는 도로에 초조해하다가 간당간당하게 원통 터미널에 도착해 8시 2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간신히 잡아타고는 안도를 하지만 예보에도 없는 비가 주룩주룩 창을 적셔 기분이 잡친다. 용대휴양림에서 내려 장맛비로 넘치는 연화동계곡을 따라가다 캠핑촌 쯤에서 물에 빠지며 얕은 곳을 건너서 절벽 같은 급사면을 나무들을 잡고 한발 한발 올라 완만해진 지능선에서 찬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축축하게 비에 젖은 나무들을 헤치며 한적한 능선을 따라가다 쓰러진 나무들을 발견하고 표고 대박을 꿈꾸며 수시로 내려가 헛심만 쓰다가 돌아와 온통 비안개에 오리무중인 숲을 올라가면 얇고 찢어진 우비 하나만 걸친 몸은 이내 한기에 떨려온다. 흐릿한 족적을 보며 삼거리에서 올라왔던 곳으로 잘못 내려가다 돌아와 조금씩 뚜렷해지는 능..

거미들의 왕국

마라톤을 즐긴다는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질마재에서 택시를 내려 한남금북정맥으로 들어가 시작부터 계속 얼굴에 들러붙는 거미줄들을 걷어가며 쉽게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채근해서 새작골산이라고 하는 612.7봉으로 올라가 막걸리 한 컵 마시고 동쪽 지능선으로 꺾어진다. 흐릿한 족적을 살피며 신경수 님의 표지기 한 장이 반겨주는 갈림길에서 삼각점이 표기된 594.0봉을 다녀올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갈 길이 제법 멀어 포기하고 만다. 벌목 지대에서 괴산 쪽의 유장한 산줄기를 바라보다 뚝 떨어져서 30 여분 미국자리공과 잔솔과 가시나무들이 얽혀 꽉 막인 야산 숲을 생고생을 하며 뚫고 인삼밭으로 내려가 안장압 마을의 도로에 주저앉아 진저리를 치고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며 한동안 숨을 고른다. 정자가 있는 경..

장마 끝에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건물 공사로 오늘까지만 영업을 한다는 우이동 편의점에서 막걸리 한 병을 사서 일행들을 기다려 우이암 길로 들어가 후텁지근한 날씨에 진땀을 떨구며 방학 능선 삼거리로 올라가서 잠시 쉬고 아직 비탐방인 남릉으로 들어간다. 처음 나오는 너럭바위 전망대에서 비안개에 묻혀있는 시가지를 바라보며 막걸리를 돌려 마시고 노송들이 서 있는 암 봉으로 올라 마냥 편한 사면 길을 따라가다 구멍바위와 에덴동산을 놓치고 한북정맥 능선을 만나서 바로 계곡으로 꺾는다.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지계곡을 따라가서 수량 많은 오봉골과 만나고 조금 위의 쉼터로 올라 땀에 찌든 몸을 닦은 후 갈빗살을 데치고 만두 라면을 끓여 달달한 마가목주와 함께 먹고 이런저런 세상사를 풀어놓으며 망중한을 갖는다. 서늘한 기운..

우이남릉

전날의 산행과 과음으로 느지막하게 일어나 막걸리 한 병 챙겨서 우이동에서 흉물스러운 콘도미니엄 공사 현장을 지나 우이남릉으로 들어간다. 곳곳의 바위 틈새에서 웃고 떠드는 중년 남녀들을 보며 삼거리에서 가파른 암 능으로 붙어 첫 노송 쉼터로 올라가 맞은편의 수릭산과 불암산을 바라보며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한동안 앉아있다가 바위 틈새로 내려간다. 전에 올랐던 바윗길을 피해 우회로를 타고 능선으로 붙어 구멍바위 전의 안부에서 암릉을 넘어서 굵은 밧줄이 걸려있는 에덴동산에 올라 개미들이 노니는 너럭바위에 자리를 잡고 비장의 꽁치통조림을 따서 소주를 마시며 두어 시간 멍을 때리고 누워있다가 으슬으슬한 추위를 느끼며 일어난다. 인수봉에서 상장봉으로 이어지는 유장한 능선을 바라보다 바위를 내려가..

시원한 불암산

새벽부터 퍼붓는 장대비에 운길산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잠들었다가 비가 많이 오면 간다고 했는데 왜 안 오시냐는 캐이님의 전화를 받고서야 깨어서 일찍 아침을 먹고 밀린 일을 하는데 예보처럼 11시부터 비가 그치고 날이 맑아진다. 오랜만에 마눌님과 수제비로 점심을 먹고 느지막이 중계본동 종점으로 가서 산행 후 캐이님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매번 헷갈리는 중계약수터를 찾아 장마 끝에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능선을 천천히 걸어가면 젊은 분들은 빈 몸으로 빠르게 추월을 해서 올라간다. 봉화대 벤치에 앉아 막걸리 한 컵 마시고 미끄러운 바위들을 딛고 긴 나무계단들을 타고 불암산으로 올라 한 시간이면 상봉역에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고는 움막을 지나 덕릉고개로 가려던 계획을 접고 가장 가까운 상계역으로 하산을 ..

나른한 오후

발열과 근육통이 있어 직장을 하루 쉬고 받은 코로나 검사와 인플루엔자 검사가 모두 음성으로 나왔음에도 자기 밥 먹는 식탁에서 멀리 떨어져 앉아 있으라는 딸네미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기어이 고함과 폭언까지 쏱아내고는 마음이 편치못해 대강 배낭을 꾸려 우이동으로 나간다. 우여곡절 끝에 공사를 재개하는 콘도미니엄 건설 현장을 지나 사전 예약 해야한다는 이정표를 보고는 우이령 옛길로 갈 계획을 포기하고 용덕사 입구에서 텅 빈 산길로 들어가니 부실한 몸에서 굵은 비지땀이 뚝뚝 떨어진다. 힘겹게 융모정고개로 올라가 그늘의 의자에 앉아 시원한 골바람을 맞으며 막걸리 한 컵 마시고 힘든 몸을 추스려 용덕사 입구에서 이어지는 지능선의 암봉을 바라보며 영봉으로 올라가면 따가운 햇볕만이 내리쬔다. 그늘의 바위에 배낭을 베고 ..